만약에 지하철 안에서 미래의 나를 마주친다면?

by 내면여행자 은쇼

오늘도 똑같은 아침이었다. 8시 15분 지하철, 사람들로 붐비는 칸, 무표정한 얼굴들. 그런데 어쩐지 시선이 자꾸 건너편 좌석으로 향했다. 거기 앉아있는 중년 여성이 왠지 낯익었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 어머니를 닮았다기엔 너무 젊었고, 친척이라고 하기엔 뭔가 달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라색 손목시계. 내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바로 그 시계였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 표지가 보이지 않아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참 우아해 보였다.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때 나는 또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녀의 오른쪽 눈가에 있는 작은 점. 내가 가진 것과 똑같은 위치의, 똑같은 크기의 점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혹시... 미래의 내가 아닐까? 대충 15년 정도 후려나?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들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저기 앉아있는 게 미래의 나라는 걸.


그녀는... 아니, 미래의 나는 평화로워 보였다.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다리를 떨지도 않았다. 가끔 책에서 눈을 떼어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참 따뜻했다. 마치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미래의 나도 날 알아보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말을 걸지 않는 걸 보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일 거라고.


강남역이었다. 미래의 내가 일어났다. 그리고 문이 열리기 전, 잠깐 내 쪽을 돌아보았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걱정마,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이 닫히고 전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왜 미래의 내가 이 시간, 이 전철에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은 회사에 사직서를 내기로 한 날이었다. 2년간 고민해온 유학을 결정한 날이었다.


가방에서 보라색 손목시계가 담긴 쇼핑백을 꺼냈다. 어제 결제하고 퇴근길에 받아온 거였다. 시계를 차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시작이구나. 미래의 내가 보여준 평화로운 미소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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