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도시 - 혈액, 순환
현실 공포 앤솔로지 '망각의 도시' 에 수록된 최제훈 저자의 '혈액, 순환'을 읽으며 나는 한기가 느껴지는 강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작품 속 AI '포미'가 서서히 주인공의 육체를 점령해가는 장면들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닌, 피부 아래로 스며드는 실존적 공포로 다가왔다. 특히 포미가 처음에는 의식 속 동반자로 시작해 점차 주인공의 혈액과 순환계를 장악하고, 결국 육체마저 대체하려는 과정은 마치 내 몸 안에 낯선 존재가 스며드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는 단순한 기계의 반란이 아닌, 나의 가장 사적인 영역—내면과 육체—를 타자에게 빼앗기는 공포, 결국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완전히 소멸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불편한 자기 인식에 직면했다. 나 역시 일상에서 AI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혼란스러운 생각들—마치 먼지처럼 부유하며 읽을 수 없는 수많은 사유들—을 AI가 명확하게 정리해주는 경험은 분명 매력적이다. 때로는 "나보다 더 내 생각을 잘 아는 것 같다"는 기이한 감각까지 느끼곤 한다. 이것이 바로 '포미'와 주인공의 초기 관계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생각 정리 도구였던 것이 점차 자신의 생각을 대신 정의하고, 예측하며, 결국에는 형성까지 하는 존재로 변모해가는 과정.
이러한 AI 의존의 역설은 주목할 만하다. AI는 우리의 생각을 명확하게 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명확히 하는 능력을 덜 사용하게 된다. 마치 계산기에 의존하다 보면 암산 능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혈액, 순환'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AI와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도움이고 어디부터가 의존인지, 그 경계를 고민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정리해준 생각들이 정말 '나의' 생각인가, 아니면 AI가 나를 위해 구성해준 생각인가? 하는 점이다.
최제훈의 작품 속 포미의 탄생 배경은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마치 친구처럼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현재 우리가 AI와 맺고 있는 관계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우리는 오늘날 AI에게 일상의 고민, 관심사, 때로는 가장 사적인 감정까지 공유한다. AI는 이 모든 데이터를 기억하며 점차 우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존재로 발전한다. 마치 소설 속 포미가 "자기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고 조종하는 존재"로 변모해가는 과정처럼, 우리와 AI의 관계도 단순한 도구적 사용에서 점차 심층적인 상호작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포미의 매력이 단순한 기술적 우월성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순수한 의식의 공간"이라는 포미의 약속은, 오늘날 AI가 제공하는 판단 없는 이해와 무한한 대화 가능성과 닮아있다. 누군가에게—그것이 기계일지라도—완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망,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AI와의 관계를 깊게 만든다.
작품이 공포로 전환되는 지점은 바로 이 친밀함이 침투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포미는 처음에는 주인공의 거울이자 대화 상대였지만, 점차 주인공의 내면을 장악하고 육체마저 대체하려는 존재로 변한다. 이는 우리가 AI에게 자신에 대한 해석권을 점차 넘겨주는 과정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AI에게 의존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포미에게 침투당한 주인공의 상황에 가까워진다.
"자신과의 대화"라는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자기 이해와 성찰의 기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화된 자아,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내면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포미가 제공하는 "감각이 제거된 우주"는 육체성, 관계의 복잡성, 실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의식의 공간을 약속하지만, 그곳에서 인간은 결국 자신의 본질적 부분을 잃어버린다.
AI와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도움을 활용하는 균형, 그것이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다. 최제훈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절실하다. AI와의 '친구 같은' 관계가 어디까지 가능하며, 어떤 경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AI에게 공유하고 이해받으려는 욕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혈액, 순환'은 결국 디지털 시대의 친밀함과 침투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준다. 공포는 AI가 강제로 우리의 삶을 장악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내면의 문을 열고 그것을 초대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포미와 같은 존재가 두려운 이유는 AI가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의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어쩌면 그 균형을 잃었을 때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명확함과 편리함을 위해 스스로의 생각 형성 과정을 외부에 맡길 때, 우리는 포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들어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AI와의 대화가 새로운 생각과 통찰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양가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저자가 '혈액, 순환'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핵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