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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솔직해지기

by 내면여행자 은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기 위해 몸소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물건을 정확히 고르는 그들은, 본인의 욕망과 취향을 양껏 카트에 담으며 만족스러울 뿐이다. 이 샵에서 본인 욕망의 가치에 대한 가격표는 오직 쇼퍼 본인이 단다." — 아이유, 「Shopper」 곡 해설 중에서


내 안의 목소리와 정반대의 메시지였다. 나는 그동안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에만 집중해왔다. 뭔가를 강렬하게 열망해본 적도, 그 열망을 표출해본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욕망과 현실의 괴리가 나를 힘들게 했으니까. 욕망을 눌러서 현실과 균형을 맞추려고 했나보다. 누군가 나에게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다고 말할까봐 두려웠나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욕망을 숨겨왔다. "욕심부리지 마라"는 말에 길들여져서, 내 안의 뜨거운 것들을 조용히 꺼뜨리며 살았다. 근데 이렇게 대놓고 욕심내고 다 가지라고 말해주는 노래라니.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라 이토록 와닿았나 보다.


욕망에 솔직해질수록, 절망도 더 선명해진다. 욕망과 현실의 간극에서 절망이 태어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에 절망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기깔나게 멋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간절히 원하기에, 내 현재 능력과 그 열망 사이의 거리가 보일 때마다 절망한다. 하지만 이 절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절망은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돌멩이는 절망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만 절망한다. 그러니까 절망하는 나 자신을 오히려 축복하기로 한다.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 오는 지나친 애씀을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쉬어가며 축복의 힘을 충전해야겠다. 외부의 인정이나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나는 스스로를 축복할 수 있다. 오늘도 빈 페이지 앞에 앉은 나를 축복한다.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하며 쌓아가는 나를 축복한다. 때로는 지쳐서 멈추기도 하는, 완벽하지 않은 나를 축복한다. 나는 내 글이 완벽하기를 바라기 전에, 내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먼저 축복하기로 한다.


창작은 마라톤이다. 숨을 참고 달릴 수 없다. 욕망이 타오를 때는 그 불꽃을 온전히 느끼고, 절망이 밀려올 때는 잠시 멈춰서 나를 돌본다. 그리고 다시 쓴다. 숨 쉬듯이, 심장이 뛰듯이, 자연스럽게.


나는 아름다운 미완의 별을 품고 있다. 그 별은 이미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 빛이 세상에 닿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지금 당장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아직 독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 안의 별이 빛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수억 년이 걸리듯, 독자의 마음까지 닿는 여정에도 그런 우주적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 안의 별이 꾸준히 타오르도록 돌보기로 했다.


욕망을 억누르지 않겠다.

절망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축복한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키워간다.

욕망과 절망, 둘 다 내 안에서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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