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에서 본 작가, 책에서 본 사람
나는 작가로 살고 싶다. 책을 출간하고, 북토크를 열고, 독자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삶. 그러한 장면들이 내 안의 무대 위에 이미 펼쳐져 있었다. <일인칭 가난>의 저자, 내 또래의 작가가 어떤 용기로 부끄러움을 뚫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북토크를 ‘작가의 무대’로 상하며, 그 무대를 소망의 거울 삼아 미래의 내 모습을 비춰보고자 북토크로 향했다.
북토크 내내 시선은 온통 ‘작가’에게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20년간 기초생활수급자였다는 말, 가정사의 어둠을 숨기지 않고 적어낸 용기. 작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나는 저런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난이 만든 강인함, 결핍이 만든 진심 앞에서 나는 열패감과 동경 사이를 오갔다. 내 마음속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선 강력한 시련이 필요하다는 이상주의적 믿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작가님은 말했다. “자기연민이 20%였다면, 설득력에 대한 고뇌가 80%였어요.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어요.” 자기 고백을 글로 풀어낼 때, 부끄러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독자에게 닿고자 하는 글을 쓰려는 태도. 그 태도는 너무나 프로페셔널했고, 작가라는 직업에 가진 숭고한 환상을 강화했다.
“우리는 모두 예비 수혜자고, 수급은 불행도 영광도 아니다.” 이 말은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가난을 불행이라 단정하지 않고, 수혜를 부끄러움이나 고마움으로만 환원하지 않는 태도. 그 말엔 수많은 시선과 판단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사유의 결이 담겨 있었다.
“가난은 노력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말은 나를 멈춰 세웠다. 무언가를 꿈꾸는 것, 글을 쓰고 퇴고하는 것, 자아를 탐색하고 삶을 설계하는 것. 그 모든 시간은 생존으로부터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북토크 말미,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되는 것보다, 삶을 살아내는 게 먼저다.” 그 말이 옳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순간의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겐 작가의 꿈이 그 어떤 삶보다도 먼저였으니까. 나는 나 자신보다, 내가 쓰는 이야기에 더 깊이 몰두해왔다. 이야기는 나의 자식 같았고, 나는 마치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챙기는 엄마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북토크 중에는 가난이 그저 배경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난 그 자체보다, 그것을 글로 풀어낸 ‘작가’라는 존재가 더 궁금했다. 책을 낸 작가, 무대 위에 선 작가, 조리 있게 말하는 작가.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고, 그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내가 언젠가 저 자리에 서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저렇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이 이어질수록,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의식이 솟구쳤다. 그날 나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안의 작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토크에서는 작가의 단단한 말과 태도에 압도당했다. 무대 위의 그녀는 이미 완성된 존재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 속에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온, 살아남으려 애써온 한 사람이 있었다. 그제서야 북토크에서 놓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대상 지원을 받아 미국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의 마지막 문단은 나를 멈춰 세웠다. 담담한 문체였지만, 그 담백함이 오히려 더 깊은 무언가를 남겼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받기만 했으니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렸던 아이들.
무언가 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소중한 게 사람인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짊어진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성취와 증명에 대한 강박이 사람을 얼마나 서서히 갉아먹는지를 알기에, 이 아이들의 미래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내가 바로 그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던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복지재단에서 일할 때, 나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으면 괜히 기분이 상했다. 무료 도시락에 불평하는 민원인을 보며 속으로 '주는 대로 먹지, 말이 많네'라고 냉소했고, 장학금 수혜자의 자소서가 성의 없으면 '날로 먹는다'고 분노했으며, 수혜자가 경쟁사 제품을 쓰겠다고 말하면 '잘해줘봐야 소용없네'라고 혀를 찼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경멸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모든 불쾌감의 밑바닥엔, ‘받았으면 그만큼 보답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도와줄 의욕이 뚝 떨어지곤 했다. 게다가 나는 도움을 줄 ‘자격’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착하게 살고, 감사할 줄 알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실상은 시스템의 말단 직원일 뿐이었는데도, 알량한 갑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복지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도 결국 그 연장선이었다. 나는 늘 타인의 결핍과 마주해야 했고, 그게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위를 보고 성장하고 싶었지만, 복지는 아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그렇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계를 전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지 고민을 이어갈 시간이 없다.
내가 미래를 고민하다가 써버린 시간에 돈을 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p.123
나는 나를 다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성찰하고, 탐색하고, 써내려가는 시간.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들을 차분히 곱씹으며, 나의 세계를 천천히 가꿔나간다.
그런데 가끔 착각한다. 이 성장이 오롯이 내 능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친근한 누군가의 자비, 사회가 제공하는 기회,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성장은 내가 온전히 이뤄낸 것이 아니라, 나에게 허락된 조건들이 만들어준 여유 덕분이었다. 내적자산을 쌓아온 시간들이 사실은 엄청난 특권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시간들을 ‘감사’라는 말로 정리하곤 했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이 감정은 타인의 불행을 딛고 선 상대적 안도감이 아닐까? 타인의 고통을 내 감사의 기준으로 삼는 무의식. 나의 감사 속에는 우월감과 죄책감이 교묘하게 포개져 있었던 건 아닐까.
곱씹을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안도하고, 그 위에 서서 감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이것이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가진 본성이라면, 나는 이 어두운 본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답이 없는 질문.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물음을 놓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