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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쓴 소설

mbti 열등기능과 창작의 수치심에 대하여

by 내면여행자 은쇼

MBTI는 이제 자신을 소개하는 일종의 사회적 언어가 되었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우리의 성격유형은 단순히 네 글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네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던 MBTI는 진짜 MBTI가 아니다』에 따르면, MBTI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건 ‘심리기능’이다. 사람은 누구나 4가지 심리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 우선순위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 이들은 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살아가는 네 명의 인물과 같다.


주기능(1위): 내 마음속의 영웅 — 내가 가장 편하게 쓰는 기능, 유능함의 원천
부기능(2위): 내 마음속의 부모 — 주기능을 보완하고 균형을 맞춰주는 보호자
3차기능(3위): 내 마음속의 소년소녀 — 미숙하지만 순수한 나의 또 다른 모습
열등기능(4위): 내 마음속의 수치스러운 나 — 가장 숨기고 싶은 취약성, 수치심의 원천


나의 성격은 ‘영웅과 부모’가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패턴 속에서 ‘소년소녀와 수치스러운 나’가 뒤엉키는 혼란을 함께 품고 있는 것이다.


나는 ISTJ다. ISTJ의 주기능은 Si(내향 감각), 부기능은 Te(외향 사고)다. 그 덕분에 오랫동안 성실하게 계획하고 기록하고 살아왔다. 블로그에 글을 차곡차곡 쌓고, 돈을 모으고, 루틴을 만들며 안정적인 삶을 꾸려왔다.

그런데 창작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소설을 쓰려 할 때마다,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창작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마치 내 안의 수치스러운 감정, 불안정함, 망상, 불확실성을 꺼내어 들키는 것만 같았다. 왜일까?


그건 창작이 내 3차기능인 F(감정) 과 열등기능인 Ne(외향 직관)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F는 솔직한 감정 표현이다. 나의 고유한 가치와 내면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Te 중심의 나에겐 너무 감정적이고 유치해 보일 수 있다. Ne는 자유롭고 확장적인 상상력이다. ‘이렇게 되면 어떨까?’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탐색한다. 하지만 Si-Te에 익숙한 나에겐 너무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나는 내 안의 왼손으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장 미숙하고 서툰 모습. 그래서 창작은 때로 수치심의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문장이 유치해 보이고, 감정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이걸 남들이 본다는 게 너무 민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내 안에서 가장 간절히 표현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당신이 알던 MBTI는 진짜 MBTI가 아니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열등기능은 수치심의 원천이며, 우리의 가장 미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 열등기능을 조금씩 수용하고 통합해가는 과정이다.” (p.141 요약)


나는 최근 몇 년간 내 창작 여정을 통해 점점 그 열등기능을 꺼내고 있었다. ‘서툰 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글을 쓰는 연습. 감정적인 나, 비논리적인 나, 즉 나의 Ne와 Fi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연습.


당신도 창작을 하며 부끄럽거나, 내가 이걸 쓸 자격이 있나 싶은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은 당신이 못나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당신이 지금 열등기능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의 '왼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하고 있는 거다.


내면의 수치심과 함께 쓰는 글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글이다. 창작은 내 안의 영웅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나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글을 써보자. 그건 당신의 가장 깊은 진심이니까.


� 참고도서: 고영재, 『당신이 알던 MBTI는 진짜 MBTI가 아니다』, 인스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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