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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테두리를 넓히는 일

by 내면여행자 은쇼

사람은 결국, 자기 경험의 테두리 안에서만 감각한다.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릴 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느낄 거야’라고 믿었고, 청소년기엔 ‘왜 아무도 나처럼 느끼지 못할까’에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경험이라는 테두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테두리 안에서 세상을 감각하고 해석한다는 걸.


나는 그 경계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경험이 부족하다 느낄 때, 직접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낯선 길을 걷고,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고, 낯선 감정을 흘려보내면서 내가 알던 ‘나’는 조용히 흔들렸다. 그때마다 감정이 낯설게 피어났고, 그 낯섦은 나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나는 그 바깥을 향해 나가면서도 동시에 안으로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어떤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그때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꺼내 보았다. 기억은 때때로 잊히지만, 감정은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을 붙잡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위에 새로운 감정을 얹어 보았다.

낡은 상처 위에 새로운 언어가 생겨났다. 뿌연 기억 위에 선명한 이미지가 피어났다. 그렇게 내 안에서 과거는 다시 쓰이고, 현재는 해석되고, 미래는 상상되었다.


창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것을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상상력의 확장이라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창작은 나의 경험을 확장된 의식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그것은 단순히 ‘겪는 것’이 아니라,겪은 것을 감각하고, 다시 감각하며, 다른 가능성으로 다시 써보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감정 앞에 서툴고, 내가 쓴 문장을 의심하고, 어떤 결핍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채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이기에 나는 또 한 편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경험은 늘 제한적이지만, 그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의 태도는 무한하다. 나는 그 시선을 매만지며, 어느 날 다시 쓰게 될 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나의 테두리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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