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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가포르 자매님 May 16. 2019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고통엔 두 종류가 있다.

그럼에도 왜 사냐고 묻거든 (고통 가득한 글)

싱가포르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토록 바라던 싱가포르 취업을 했고,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행복-행복-행복-행복-행복-행복-행복 이냐고 묻거든 그건 아니다. 예상했던 바다 대학, 취업, 해외취업, 여행 등 살면서 여러 목표를 이룬 후에도 항상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십몇 년 산 인생이지만 결국 고통이 인생의 디폴트 값이고 인생은 '이 고통을 선택할지 저 고통을 선택할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놀러 가도 고통, 집에 있어도 고통, 배불러도 고통, 배고파도 고통 등등 어쩌라는 건지의 고통들이 예시이다.)


이 글에선 경험을 통해 느낀 두 가지의 고통('이 고통'과 '저 고통')을 풀어 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참아도 괜찮은 의미 있는 고통


다들 한 번쯤 경험이 있는 치과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치과 가면 ㅈㄴ 아프다. 그런데 충치를 방치하는 것도 ㅈㄴ 아프다. 둘 다 ㅈㄴ 아프지만 우리는 치과를 간다. 왜냐 치과에서 고통을 '견디면' 결과적으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이 안 시리게 먹을 수 있고, 다른 치아에 충치가 옮아 악화되는 최악의 상황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고통을 견딘 결과가 내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에겐 영어, 공부, 운동, 배낭여행, 해외취업을 통해 경험한 고통이 치과에서 느끼는 종류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 할 때 '와 너무 재밌어!' 절대 이러면서 공부하지 않았다. 대신 '여름방학에 더워 죽겠는데 이 청춘에 학원에 박혀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10배는 넘게 들었다. 운동도 마찬가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싶었지 새벽에 나와 운동장 20바퀴를 뛰고 싶지 않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인 거 아는데 여행에서 괜히 카메라, 지갑 잃어버리고, 괜히 긴장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어찌 보면 돈 주고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 멀쩡히 직장 잘 다녔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언어 핸디캡(영어로 일하기), 외국인 신분 등도 고통이다. 그런데 지금의 고통도 결국 견디고 싶은 고통인 것을 알고 있다. 싫었던 영어 공부하니 내가 아는 세계가 넓어지고, 운동해놓으니 튼실해지고, 배낭여행하고 보니 돈 있어도 못 살 추억을 얻으며 견뎌도 괜찮은 고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딤으로써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내가 대체 왜 이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에 의미를 두는지 발견할 수 있는 것도 Side benefit이 된다.)


결과적으로 조치가 필요한 의미 없는 고통


같은 치료의 예를 들어보겠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진단이 잘못되어 고통을 엄청 참았는데도 치료는 안되고 결국 엉뚱한 고생만 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인생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제야 얘기하건대 나는 첫 직장을 생기 없게 다녔다. 물론 자유로운 분위기, 배울 점 있는 상사(다는 아님), 워라밸, 직무 등 좋은 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구하는 Proficiency가 높아져 필요한 지식은 늘어나는데, 나는 해당 프로덕트에 대한 지식을 깊게 공부하는 것을 지루해하고 산업 특유의 영업구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꼭 상사 눈에 잘 띄기 마련 그래서 혼나기도 하고, 상담도 받으며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문제는 내가 고통을 견디며 전혀 뿌듯해하지 않는다는 것과 점점 동태 같은 눈을 가지게 된 다는 것이었다. 음 내겐 별로 견뎌도 의미 없던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는 첫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났다. 애초에 진단이 잘못되어 겪는 의미 없는 고통일 것이라 믿으며... (결론적으로 맞는 선택이었다.) 이처럼 어쩌면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사실 의미가 없어서 exit이 필요한 상황일 수 있는데, 자꾸 덮으려고 하고 무시하면 애꿎은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겪는 고통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의미 없다 판단되면 그에 맞는 조치도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고통은 Barometer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 글을 나는 왜 이렇게 장황하게 썼을까? 음 해외에서 일하는 거 행복하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그냥 한국에서 사는 거랑 비슷해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어. 그런데 의미 있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아."라고 대답해주고 싶어서 인 것 같다. (좋은 마무리를 맺고 싶지만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우니 여기서 마무리를 짓겠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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