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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Mar 06. 2020

[리뷰]『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어른이란 절벽에 다다랐을 때,


  콜필드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 있는 이중적인 자아이다. 팬시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며 학생 신분을 상실하고, 술집에서 나이를 들키면 콜라나 홀짝여야 하는 콜필드는 아이도, 어른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콜필드는 자신이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알아봐 주지 못하는 어른들이 멍청하단 말을 되뇐다. 

엔톨리니 선생이 해준 조언은 이미 콜필드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 다른 이의 언어를 통해 마주했을 뿐이다.

 콜필드에게 어른이란 오리가 겨울에 어디로 가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지겨운 인간들이다. 그럼과 동시에 자신 역시 어른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은 콜필드를 혼란으로 이끌고, 스스로를 파괴하게끔 만든다.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변태이거나, 흥겨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로 세상의 인간을 분류하는 콜필드에게 뉴욕에서 만난 어른들은 죄다 시시한 말만을 지껄인다.

콜필드에게 죽은 동생 앨리는 되찾을 수 없는 자신의 일부분이다.

 지겨운 연극을 보고, 답답한 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누면 콜필드는 이내 울적해지고, 여동생 피비와 죽은 동생 앨리를 떠올린다. 콜필드에게 안식처는 어린 동생들뿐이다.

콜필드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피비와 자신의 순수함이다.

 콜필드의 순수는 피비를 통해 투영된다.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에 손을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단 말은, 끝내 자신을 파괴해가며 어른이란 절벽에 다다른 본인을, 사라지기 직전에 닿아있는 자신의 순수함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콜필드 본인에게 한 말이자 피비에게 건네는 구조 요청인 셈이다.




 콜필드에게 피비는 마지막 남은 사회와의 끈이자 어른을 유예해주는 심판자다. 콜필드가 울적할 때마다 떠올리는 이는 피비이며, 떠나려는 다짐을 돌려세운 이도 피비이다. 또한, 콜필드는 피비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하며, 끝내 순수함을 지켜주려 한다. 콜필드에게 피비를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어른이란 절벽으로 뛰어가는 콜필드를 재빨리 붙잡아줄 수 있는 존재는 피비뿐이기에.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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