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by 김몽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의 서두이다. 시마무라와 같은 기차를 타고 작품 속으로 입장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홀린듯이 터널을 지나면 새하얀 눈의 고장이 펼쳐져 있고, 까만 밤하늘은 대비되는 눈과 극을 이루어 더욱더 아름답게 빛난다. 몇 개의 단어만으로 자연의 무한함과 대립하는 것들의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유한한 인간인 시마무라의 눈으로 보는 무한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고마코와 요코의 순수함은 빛을 잃지 않는다. 시골에서 샤미센°을 켜며 죽음을 앞둔 약혼자를 위해 게이샤°°가 된 고마코, 병자를 간호하는 요코의 행위가 시마무라에겐 허무한 일로 비추어진다. 시마무라가 지닌 허무의 벽 앞에서 고마코와 요코의 행위는 무위의 것으로 여겨지지만 도리어 허무하기에 두 여성은 순수한 존재가 된다.


° 샤미센: 일본의 전통 현악기

°° 게이샤: 일본에서 연회석에서 술을 따르고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직업을 가진 여성


부모의 유산으로 무위소식하는 방랑자인 시마무라에게 돈을 벌고, 삶을 끈질기게 유지하는 모습은 와 닿지 않는다. 또한, 방랑자라는 신분은 시마무라에게 어떠한 족쇄도 채우지 못하며, 자신의 방에 매일 같이 방문하는 고마코와 아름다운 목소리의 요코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묘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표출하지 않는 시마무라의 모습이 책임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3년 간 매년 고마코가 있는 유자와 온천으로 찾아오는 시마무라의 행위도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무라가 유자와 온천으로 찾아오는 이유에 그녀들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시마무라는 해당 고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웅장함을 원했다. 시마무라는 눈부시도록 하얀 눈과 산을 사랑했다. 자연의 무한함에 대한 찬양은 자연스레 유자와 온천에서 마주하는 고마코와 요코에게 이입된다. 인간의 유한함과 헛수고 역시 아름답고 사랑할만하지만 자연의 웅장함엔 미치지 못한다. 이는 시마무라가 하늘 가득한 은하수를 보며 이 고장엔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라 말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시마무라에게 은하수보다 더한 아름다움은 유자와 온천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마코와 요코는 단순히 시마무라의 유희가 아니다. 이따금씩 타오르는 고마코의 뜨거운 사랑과 요코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인간만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무한한 자연일지라도 인간의 감정과 표현을 흉내 내진 못한다.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인간의 유한한 아름다움이 대비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유자와 온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맛볼 수 있는 유자와 온천이야말로 방랑자인 시마무라에겐 이상세계인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압도된다.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함과 동시에 목숨을 앗아가는 자연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고, 인간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셀 수 없는 것에서 셀 수 있는 것을 빛나게 가꾼다.

문학, 예술, 철학 모두 헛수고인 일이다. 동시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한 행위이다. 웅장한 은하수 아래에서 인간이 하는 문학, 예술, 철학 역시 하나의 별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20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