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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Apr 24. 2020

[영화] 『데몰리션』을 보고

분해와 조립을 통해 진실 마주하기


뭔가를 고치려면 모든 걸 분해하고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감정이 있다. 이별과 사랑의 감정이 그렇다. 그 순간의 아픔과 상실감을 잊기 위해 더 활발해지고 일에 열중한다. 사람 만나는 일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멀리 돌아서 마주한 감정은 닳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데이비스는 아내를 잃었음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모르는 사람에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장인어른은 이러한 데이비스의 모습이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휴식을 권한다.

 데이비스는 아내의 죽음 이후 기계를 분해하는 취미가 생긴다. 고장 난 냉장고를 분해하고 멀쩡한 커피머신을 분해하기도 한다. 데이비스의 분해는 사람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습이다. "뭔가를 고치려면 모든 걸 분해하고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라는 장인어른의 말로부터 영감을 받고 시도한다. 하나 그는 분해할 줄만 알지 조립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는 기계와 인간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데이비스는 문제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분해하고 파괴하지만 다시 조립하진 않는다. 다시 조립해야 할 방법도, 이유도 알지 못한다.

 데이비스가 가진 '분해와 파괴의 과정을 통해 중요한 게 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캐런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를 통해 확인되고 고쳐진다. 대마초 없인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캐런과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크리스를 사회는 고장 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고쳐질 필요가 있는 고장 난 기계와 같다. 사회는 이들에게 약물치료와 정신병원, 폭력을 사용하여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것이 아닌, 도려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하나 데이비스는 이들을 고장 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친숙함을 느끼고 고장 난 행위를 함께 한다. 이를 통해 데이비스, 캐런, 크리스는 함께 고쳐진다.

 데이비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분해를 하여 중요한 것을 알아내는 방법을 배운다. 또한 파괴와 분해의 다름을 인지한다. 분해하는 과정에서 데이비스는 놓친 아름다움과 감정을 찾는다. 분해를 통해 발견한 죽은 아내 줄리아와 함께 나눈 흔적과 감정은 꽤나 컸으며 깊었다. 무표정으로 파괴하던 데이비스는 깨닫는다. 아무런 감정 없이 부수는 행위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분노를 갖고 파괴하면 대상에 대한 증오가 남고, 애정을 갖고 분해하면 대상에 대한 사랑이 남는다는 것을.

 캐런과 크리스의 고장남을 통해 데이비스는 자신의 고장 난 부분을 발견하고, 천천히 분해한다. 분해하기만 하던 그는 점차 조립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곤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찾는다.

 분해를 통해 상실을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벗겨진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과정엔 아픔이 필히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에 필요한 용기 역시 혼자의 힘으로 끌어내기란 어렵다.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 데이비스에겐 캐런과 크리스가 그러했고, 캐런과 크리스에겐 데이비스가 그러했다.

 끝으로 데이비스의 갈매기춤 영상을 첨부한다. 그동안 내가 봐온 모든 영화의 모든 장면 중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장면이다. 좋은 건 나눠야 더 좋은 법. 꼭 봐줬으면 좋겠다!


https://youtu.be/IBZ6vcUDe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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