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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Sep 03. 2019

[비평문]스파이크 존즈의 『HER』을 보고

이별을 통해 성숙해지기

 이제 우린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거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이해받고 관심 받는 것은 어렵다. 항상 내가 받은 것 그 이상을 줘야 하고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 잘 해줘야 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중 인간은 적당한 거리 유지를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의 방식대로 변화시키려는 행동을 적당한 거리 유지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영역을 침해하여 선을 넘는 행동으로 관계에 불편함을 남긴다.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의 방식대로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만약 상대방이 자신의 이상대로 바뀌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실망의 표현으로 변화를 강요한다. 이처럼 나의 인생이 아닌 다른 이의 인생에 관여하는 것만큼 영양가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끼우다가 안 된다 싶으면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사람을 바꾼다. 이러한 행동은 연인, 부부 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시어도어는 아내 캐서린과 별거 중이다. 캐서린은 자신의 입맛대로 결혼생활의 역할을 배정하는 그의 모습에 질려 이혼을 요구하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시어도어에게 그녀의 이혼 통보는 잔잔한 연못에 떨어진 물 한 방울과 같았다. 그의 일상은 무기력해졌으며 그저 기계처럼 감정을 편지에 나열하는 일만이 곁에 남게 되었다. 시어도어의 친구인 에이미 역시 자신의 노력을 판단하는 남편에게 거부감이 들어 8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 두 부부가 갈라서게 된 결정적 이유는 변화의 강조이다.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무의식중에 변화의 강조로 표출된 것이다. 무의식이 낳은 언행의 피해자들은 자신을 잃어간다는 느낌을 받고 떠난다. 지나친 욕심은 결국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막연히 상대방의 변화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변화를 시도한다면 남겨짐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현대 사회에서 조건 없는 이해와 관심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조건 없는 이해와 관심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되기 쉽지 않을뿐더러 본인이 모든 짐을 짊어지려는 과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주는 것에 낯설고 받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OS와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할 뿐이다. 이러한 사람을 곁에 둔다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 유지에 실패한다면 그들은 영화에 나오는 OS들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만사를 떠나보낸 후 시어도어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보낸다. 완벽한 OS도 자신의 틀에 맞지 않았는데 인간인 아내에게 변화를 요구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다. 시어도어는 사만사와의 만남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녀와의 이별로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이별로 인해 겪는 아픔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듯 새로운 인연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별함으로써 슬픔과 공허함이란 감정의 쓰림을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별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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