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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Aug 31. 2019

[리뷰]헤라클레이토스로 본 『8월의 크리스마스』

삶에 대한 유한성


  8월의 마지막날,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시선으로 말이다.


"오직 자기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자만이 강렬한 삶을 산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 중 하나인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본고의 사고를 휘저어 놓은 사상가는 헤라클레이토스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며, 죽음이란 남녀노소불구하고 한 번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다. 허나 본고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을 본인의 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면, 막연히 다가온 죽음에 두려움만을 갖게 될 것이며,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마지막인사를 완벽히 해내지 못할 것이다.

  주인공인 정원은 시한부판정을 받은 환자이자 초원사진관의 주인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정원은 겉으론 무덤덤하게 행동하지만 친구와 술을 먹은 후 본인이 죽게 될 것이란 말을 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삶의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다림이 등장한다. 다림이 사진을 맡기러 사진관에 간 일을 계기로 두 남녀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작한다. 두 남녀사이엔 언제부턴가 설렘과 풋풋함이 싹트게 된다. 다림은 정원의 순박한 미소와 따뜻함에 호감을 느끼고 그에게 서툰 데이트 신청을 한다. 정원은 순박한 미소로 승낙의 표현을 나타낸다. 허나 시한부인 정원은 그녀와의 행복한 시간 속에서도 제대로 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정원의 몸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른다. 다림은 굳게 문 닫힌 초원사진관을 보며 이별의 감정을 느낀다. 이후 정원은 죽게 되고 다림은 사진관 앞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영화 내내 그의 언행이 시한부임에도 초연함을 보여 인간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언제부턴가 찾아오지 않는 다림을 그리워하거나 찾으려 시도도 않는 정원의 태도에서 감정의 흔들림을 잡아내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진정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인지에 대한 의문점과 정원이 다림과 같은 감정이 아닐 것이란 의구심이 들 때쯤 알게 되었다. 정원은 다림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무수한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이 대사는 다림에 대한 사랑고백이었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이성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닌, 감정의 절제였던 것이다.


  정원의 삶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대립자는 죽음이었다. 그는 바로 앞의 죽음을 통해 남아있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홀로 남게 될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종이에 비디오 조작법을 적고, 자신의 물건을 차분히 정리했다. 다림에 대한 마음은 사진관 진열대에 그녀의 사진을 놓으며 수줍게 나타냈다. 마지막을 정리하는 정원의 행동 중 필자의 기억에 선명히 남은 장면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통해 정원이 죽음을 진정 맞이할 준비가 되었단 사실을 알았다. 또한 할머니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정원의 마지막이 여실히 느껴졌다.

  인생의 마지막 날짜가 정해진 삶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허나 남은 삶을 고통과 슬픔 속에 보내기엔 인생은 꽤나 아름답다. 삶의 유한성을 복기한다면, 익숙한 것들로부터 신선함을 찾고, 새로운 인연에 두려움을 품지 않는 태도를 지닐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후회 남지 않는 강렬한 삶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의 죽음을 의식해야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가르침을 상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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