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몽스 Aug 28. 2020

[리뷰] 통역사 정다혜의『인생도 통역이 되나요』를 읽고

버라이어티 통역 라이프


한국어를 듣고 한국 사람이 반응하는 것과 동일하게, 영어를 듣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반응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통역의 원리다.
p.169

  영화<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할 때,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할 때,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순간엔 항상 훌륭한 통번역사가 있었다. 다른 문화권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식 문화와 농담을 통번역사들이 훌륭하게 할 몫을 해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통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더라면 위의 두 사례와 같은 성과를 내진 못할 것이다. 그저 한국에서만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통번역사의 역할은 도래한 글로벌 시대에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인생도 통역이 되나요』는 국제회의 통역사 정다혜 작가의 통역사 커리어와 통역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현실적 조언이 담긴 책이다. 통역사를 희망하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만하다. 통역사라 하면, 한국어-외국어를 번갈아가며 혹은 그 반대로 통역해 주는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통역사라면 그저 ‘통역’ 혹은 영어만 잘하면 될 것이란 오해를 한다. 만만하게 까진 아니더라도, 통역사의 고충을 알지 못했던 나는 『인생도 통역이 되나요』를 읽으며 통역사란 직업에 괴리감(?)이 생겼다. 그만큼 통역사는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임을 느꼈다. 




“통역사에게 요구되는 많은 자질 중 하나는 순발력이다. 통역이라는 프로세스 자체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빨리 끝날 거라거나 내용이 어렵진 않을 거라는 클라이언트의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된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p.132


“하고 싶은 공부를 쉬지 않고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 나를 무조건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내가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다.” p.137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적응력, 유연함, 이 모든 것 또한 통역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일 것이다.”p.188




 통역사가 하는 일은 언어를 통역하여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동시통역을 할 땐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에 이를 대처할 순발력이 중요하다. 또한, 대중은 통역사가 통역하는 모습만을 보지만, 이를 준비하기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연사와의 교류 등이 필요하다. 통역이 시작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연사가 준 자료를 읽고, 공부하는 등의 준비를 갖춰도 언제나 완벽한 준비는 없다. 저자는 10년간 통역사를 하며 스스로 만족했던 통역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훌륭했다고 칭찬했더라도 자신을 객관화한다. 그리하여 통역을 마친 뒤에도 그 상황에 보다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고민하며 매 순간에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자신의 몫을 다했으면 스스로를 칭찬하며 잠시 쉬어갈 만도 한데 저자는 안일해지지 않는다.




“한 검사님이 내게 해준 말처럼 재판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그 과정에서 내가 살지 않은 다른 모습의 삶들을 통해 거꾸로 나 자신을 찾아간다. 그렇게 나는 법정에서 인생을 배운다.” p.68




 저자가 최고의 통역사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은 누구나 알면서도 행하긴 어려운 ‘끊임없는 공부’다. 재판에서 피고인의 통역을 할 땐, 그들의 삶을 통해 본인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어느 곳에서나 배우고, 배울 거리를 찾으려는 태도는 충분히 본받을만하다.




“통역사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는 걸 지양한다. 통역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이 나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항상 화자의 말과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화자의 의도대로 전달하는 훈련을 한다.”p.157




  한국식 농담은 재치 있게 통역하여 박수갈채를 받을 때도 저자는 통역사가 너무 눈에 띄는 것 아닐까란 고민을 한다. 물론 기뻐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긍정적 피드백에도 통역사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아마 저자는 통역사가 되지 않았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도 ‘Only one’이 되었을 것이다.




“그저 ‘일정이 가능한 통역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다혜 통역사’를 찾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내게 맞춰 자신들의 스케줄을 변경하거나, 심지어 이미 하기로 되어있던 다른 일을 취소할 수 있다면 그 취소 수수료까지 낼 테니 자신들의 일을 맡아달라고 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다.”p.194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참 뿌듯한 일이다. 통역사로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하게 만든 저자는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는다. 점차 ‘통역사’가 아닌, ‘정다혜 통역사’를 찾는 일이 늘어나고, 이는 선순환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고 싶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인생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직업의식과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를 닮고 싶다.




“통역사로 일하면서 통번역 스킬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위치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전달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충실한 연구를 기반으로 나만의 시각을 말할 수 있는 학자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꿈꾼다.”p. 113




  통역사도 각자의 전문 통역 분야가 있다. 저자는 범죄와 국제법 관련된 통역에 있어선 전문가 못지않은 경험과 능력을 갖췄다. 현재는 국제법을 연구하는 법률가가 되기 위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나아가려는 저자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통역사의 전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듯 내 앞길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전망을 걱정한다는 것은 내 인생 설계에 대한 주도권을 시장에 맡긴 채 변화하는 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휘둘리겠다는 것을 뜻한다.
p.195


 끝으로 저자는 통역사가 되고자 하는 꿈나무에게 일침 아닌 일침을 한다. 이는 통역사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 해당될 것이다. 전망이 좋지 않아도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이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전망이 좋지 않아서 해당 분야로의 진입을 망설이는 것은 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과 같다. 전망 역시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고, 최고가 되기 위한 태도와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전망은 그저 지엽적인 것이 될 것이다. 전망 운운하며 그동안 몇 가지의 일을 포기한 나의 의지 없음을 반성하게 된다.


 새로운 직업을 알게 되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통역사는 새로운 직업이 아니었지만,『인생도 통역이 되나요』을 읽고 난다면 완전히 새로운 직업으로 보일 것이다. 모든 직업과 그 분야의 전문가에겐 각자의 고충이 있고 나름의 성취가 있다. 가고자 하는 분야에 전념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살며시 들쳐보는 것도 해봄 직하다.미래가어떻게 바뀔지는 나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437111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클래식에세이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