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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왼손잡이

by 은수달


공중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가려는데, 문 손잡이가 당연하게도 오른쪽에 붙어있다. 그래도 왼손으로 밀고 나간다.


왼손잡이로 살아가기에 고달프고 치사한 대한민국. 그래서 오른손잡이인 척하거나 양손잡이가 될 수밖에 없다.


불편한 건 감수하면 된다. 그러나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나 노골적인 시선은 참기 힘들 때가 많다.


"재수 없게 왜 밥을 왼손으로 먹는 거니?"

명절이나 제사 때 친척들과 식사할 때마다 듣던 질문이다.


"왼손잡이니까 왼손으로 먹죠."

당당하게 얘기하면 혀를 쯧쯧 차면서도 다들 입을 닫았다.


학창 시절에는 위험하게(?) 가위질을 왼손으로 한다며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다. 엄마는 날 억지로라도 오른손잡이로 바꿔야 할지 그냥 내버려 둘지 고민했단다.


부모님 두 분 다 오른손잡이다. 외할머니의 왼손잡이 유전자는 삼 남매 중에서 여동생과 나만 물려받았다.


왼손잡이에 관한 재밌는 일화가 있다.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 큰 외숙모는 시댁에서 처음 식사하게 되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오른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려는데, 외할머니를 비롯해 나와 여동생이 왼손으로 밥 먹는 걸 발견하고 용기(?)를 냈단다.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을 때는 왼손을 길게 뻗고, 여럿이 식사할 때는 가능한 왼쪽 구석에 앉는다. 국물 요리를 주문해서 밥이 먼저 나오면 밥을 일부러 오른쪽에 두는데도 굳이 왼쪽으로 옮기는 직원이 있다. 그러면 나의 큰 그림이 어긋난다.


그래도 한 손을 다치거나 불편해지면 다른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다. 이젠 가위질, 칼질 빼고 웬만한 건 오른손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엔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나아져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난, 왼손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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