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는 말

by 은수달

'한 해 마무리 잘하고 새해엔 함 보자^^'

알고 지낸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언젠가부터 연락 오는 게 귀찮아진 대학 동기가 있다. 학창 시절엔 붙어 다니며 많은 추억을 공유했지만, 졸업한 뒤로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러다 다시 연락이 닿아 몇 번 만났고, 주로 동기의 하소연을 들어주다 보니 그마저도 뜸해졌다. 코로나 즈음 어렵게 약속을 정했지만, 전날 갑자기 친구한테 일이 생겨서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 후로 간간이 연락이 왔고, 자기가 쓴 글을 봐달라는 메일도 왔었다. 그리고 다른 동창들 소식도 물어보곤 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 거니? 얼굴 한번 보기 힘드네 친구야 ㅠ 너 편한 시간에 연락 줘. 해 바뀌기 전에 밥 한번 먹자.'

필요할 때만 상대를 찾거나 만남 자체에 부담을 주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낸다. 하지만 학창 시절엔 나름 가까웠던 사이라 딱 잘라내기는 애매했다. 그래서 한동안 답장을 해주다가 그마저도 시간낭비 같아서 조용한 채팅방으로 보내버렸다.

반면에 몇 년 만에 청첩장을 통해 연락온 대학 동기 결혼식에는 망설임 없이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갑자기 연락해서 당황했다기보단 반가웠기 때문이다.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어떤 분은 시간 날 때 밥 한번 먹자며 연락처를 물었지만, 그 뒤론 이렇다 할 연락이 없어서 K약속이려니 했다. 하지만 다시 모임에서 만났을 땐 또! 밥 먹자고 말해서 흘러 넘겼다.

습관처럼 내뱉는 '밥 한번 먹자'라는 K약속에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K국민이 아닌 걸까. 아니면 상대의 말에 거짓이나 허세보단 진심이 몇 프로 더 첨가되길 원하는 무의식적 바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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