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결혼은 해도 좋지만 아이는 낳지 말았으면 해요. 아이 키우면서 얻는 기쁨도 크지만, 생각보다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공무원으로 일하며 모임에서도 리더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던 S가 있다. 마음이 잘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수술받고 요양하던 차였다. 그녀에게 임신은 목숨을 걸 만큼 리스크가 큰 일이었지만, 그녀는 부단한 노력 끝에 딸을 출산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휴직했다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그녀의 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미혼모와 난임에 대해 다루고 있는 덴마크 드라마 <베이비 피버> 난임 전문의인 주인공은 술김에 전 남친의 정자를 자신의 몸에 이식했고, 어쩌다 보니 임신이 되어버렸다. 문득 오래전에 본 영화 <브릿지 존스의 베이비>가 떠올랐다.
글을 쓴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종종 듣는 조언 중 하나.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경험도 풍부해지고 작가로서 좀 더 성숙해질 거예요." "그럼 남자들도 진정한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아이 낳거나 키워봐야 하나요? 그리고 애 낳거나 결혼해야만 성숙해지나요?" 나의 반문에 다들 입을 다물고 만다.
결혼이 장밋빛 미래나 당첨을 보장하는 청약 통장이 아니듯 출산도 마찬가지다. 여자 입장에선 일단 몸이 달라지고, 아무리 주위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절반 이상은 엄마인 여자의 몫이 되어버린다. 출산 후 3개월 이내 관리받지 못하면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얘길 들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건 부잣집 며느리나 연예인한테나 해당되는 얘기다. 그런데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부부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유로, 남들 다하는 거라서(요즘엔 이 말이 통하지 않지만) 우린 연애부터 결혼, 출산 혹은 육아 등을 강요받는다.
"나 어때? 애 엄마처럼 보여?"
주위의 시선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당당했던 여동생은 둘째 조카를 낳은 후 부쩍 옷차림에 신경 쓴다. 혹시라도 자신이 애엄마나 아줌마처럼 보일까 봐 두렵다고 했다. 혹자는 '애 엄마를 엄마로 보는 게 어때서?'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잘 키우며, 능력 있고 살림 잘하는 아내 혹은 며느리 역할까지 동시에 요구받는 우리 사회에서 '애 엄마'라는 꼬리표는 왠지 버거워 보인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반면에 어떤 생명은 태어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탄생 자체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부담감으로 남는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안겨줄 것인가. 당신의 실수나 이기심 혹은 편견이 한 개인을 궁지로 몰고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