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잡러가 원잡러였을 때

by 은수달


"언제부터 엔잡했어요? 엔잡하니까 좋아요?"


어느 날, 지인한테 받은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


'난 언제부터 투잡을 하기 시작한 걸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학부 시절부터다. 복수전공에 틈틈이 조교나 과외를 했었고, 나의 시간은 남들보다 더 빠듯하게 돌아갔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다.


졸업 후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으며 내 삶의 태엽은 두 배로 조여졌고, 편집부터 번역, 과외, 텔레마케팅 등 다양한 알바의 세계를 경험했다. 책값을 아끼려고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고, 옷값을 아끼기 위해 쇼핑몰이나 백화점 행사기간을 애용했다.


우물 안 개구리 시절, 남들도 나처럼 치열하고 바쁘게 사는 줄 알았다. 친구들 대부분은 교사나 강사, 교수가 되었고, 나만 외딴 길을 걷고 있었다. 후배의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약간의 질투는 났지만, 순수하게 내 힘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원잡러였던 기간은 딱 일 년. 대학원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사무직에 종사하던 시절이 전부다. 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유난한 ENTJ. 취미도 일처럼 하는 타입이라 한가할 틈이 별로 없다. 그래도 가끔은 원잡하면서 단순하게 살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엔잡하면 돈도 많이 벌겠네요?"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엔잡하는 건데요."


근로소득만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어느 창업가의 말을 들으며 난 수입원을 늘리기로 결심했고, 투자에도 새삼 눈을 떴다. 지인 권유로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 덕분에 코로나 시절을 견뎠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많아 타이밍을 놓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신중한 건 좋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가능성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일단 해보자. 발을 내딛고 주위를 살피며 걷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엔잡러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엔잡러의 삶을 선택했을 뿐.


원잡러든 엔잡러든,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걷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으며 일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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