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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Jun 24. 2022

35화 엄마보다 나은 보프님


"내일 병원 가기 전까지 올게."


오늘 오후 2시 30분경, 진료를 받기 위해 여동생이 엄마 대신 동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조카들. 병원에 데려가긴 곤란해서 엄마가 잠시 봐주기로 했다. 전날 친구들과 여행을 간 엄마는 시간 맞춰 오겠다고 했고, 어쩐 일로 딱 맞춰 도착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본가 앞에 조카들 내려주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에 엄마 또 약속 있대. 시간 비워두겠다고 하더니 하루 빼곤 다 일정 있는 거 있지?"

여동생이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했는데, 본인보다 더 바쁜 엄마를 향해 불만처럼 털어놓는다.


그래도 엄마 대신 여동생이 따라와 줘서 다행이다. 엄마랑 오면 당사자보다 더 오버하기 때문에 안심시키느라 마음이 더 분주해진다. 여동생은 나랑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차분해진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연애 상대한테서 엄마나 아빠 같은 모습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난 그런 기대나 환상은 없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 마음 다 알아주리란 보장도 없고, 애정을 채워주리란 기대도 일찌감치 버렸다. 그저 쓸데없는 간섭을 하거나 앞길을 막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는 많이 부풀려진 풍선과 같고, 신경숙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를 전혀 이해할 수도, 공감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제 살길부터 찾고 자기 식대로 자식을 키우는, 다른 엄마가 더 공감이 갔다.


어쨌든 애삼이는 가끔 야속하게 굴 때도 있지만, 나의 부족한 면들을 이해하고 챙겨주는 속 깊은 남자다.


"요즘 고민이 뭐예요? 일 번 건강, 이번 일?"

"맞아요. 그리고 글쓰기랑 그 외 인간관계?"

같이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었고, 이럴 때 누군가, 아니 날 깊이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소한 일로 상처 주고 통제하려는 엄마보다 사소한 일까지 기억하고 챙겨주는 보프님이 몇 배는 더 낫다고 여겨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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