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각, 지인이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뜻밖의 임신 앞에 많은 이들은 얼떨떨하단다. 그리고 또 다른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는 얘길 들었다.
같은 두 줄인데 이토록 의미가 다르다니...
가족들 중 절반은 다녀오고, 절반은 아직이다.
그러다 아버지도 전자에 속하게 된 것이다.
지병이 있어서 걱정했던 부모님도, 미접종자인 나도 운 좋게 피해 갔다. 하지만 언제나 운이 좋길 바랄 수는 없다. 불운이라는 방해꾼이 언제 등장할지 모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증상 있으면 약부터 챙겨 먹고."
당사자인 아버지보다 보호자인 어머니가 더 난리다. 담주에 병원 진료를 앞둔 어머니는 걸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절을 겪으며 사람마다 질병이나 불운을 대하는 태도가 참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누구는 신을 원망하거나 주위 환경을 탓하기 바쁘고, 또 누구는 남들한테 피해 줄까 봐 몸을 사리거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뛴다. 한 때 모 오픈마켓에서 '수재민 돕기 캠페인'을 열어서 동참한 적 있다. 내겐 사소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양식이 될 거라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사후기증 신청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
"계속 미루다 몇 년 전 생일 때 마음먹고 했어요. 하고 나니 왠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렵진 않았어요?"
"두렵다기보단, 진작 할 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고요. 죽고 나면 사라질 내 몸의 일부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잖아요."
남다른 사명감이나 정의감을 가진 건 맞지만, 결국 누군가를 돕는 일도 나를 위한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 질서 유지뿐만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생하기 위해서 발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