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by 은수달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비로소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얘길 듣고 내가 결별해야 할, 익숙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 많은 성격과 더불어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두려움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낯을 가렸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은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 그런 성격 덕분인지 사춘기 때까지는 내게 위협이 되거나 쓸데없이 괴롭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유 없이(그들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난 뒤에는 타인에 대한 방어 기제가 더욱 견고해졌다. 나라는 우물에 갇혀 절친 외에는 대화나 소통을 거부했고, 그럴수록 낯선 이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적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새로움은 학문과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에 배우던 딱딱하고 지루한 교과서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으로 가본 낯선 도시에선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낯가림과 편견도 서서히 허물어졌다.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 역시 꼭 오래 알고 지내야 친해진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했다. 그 뒤로도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기회는 수시로 주어졌다. 학교와 직장을 옮기고, 거주지를 옮겨 다니면서 한 곳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소망이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고가 굳어지고 변화를 거부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한다. 나 역시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익숙함에 머물고 새로움을 피하려는 무의식적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익숙함에 만족하고 머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점점 더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태된다. 지나치게 위험한 순간이나 환경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만, 성장하거나 배울 기회를 거부하거나 놓친다면 그것 역시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No risk, no gain. (모험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이라는 구절처럼, 익숙함과 결별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도, 또 다른 자아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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