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조사받는 '서래'와 그녀를 실시간 감시하며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가는 형사 '해준' 그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과 야릇한 눈빛이 오간다.
틈틈이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고 훔쳐보는 그를 통해 우린 관음증의 욕망을 읽어내고, 그에게 잘 보이려 방수 밴드에 향수까지 뿌리는 그녀를 통해서는 이성을 유혹하는 또 다른 기술(?)을 발견할 수 있다.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서래와 용의자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형사 해준을 보면서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자의 X의 헌신>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전작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 씨>에 비해 확실히 임팩트가 약하네요. 하지만 예술하는 사람들에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줄 것 같아요."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우린 서로 다른 관점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바라보았고, 보고 난 뒤의 감상평도 사뭇 달랐다.
해준이 서래의 증거(?)를 숨겨주면서 이야기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그는 붕괴되고 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래는 그 지점에서 그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내 사랑이 시작됐어요."
"난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어요!"
물론 직접적으로 그가 그녀에게 '사랑한다'라고 속삭인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눈빛이나 행동 모두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어버리게 한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가 남편을 죽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영화를 통해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펙트는 그녀가 그녀의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과 해준을 유혹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살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했으며, 그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타인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해준이 서래한테 연민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것처럼, 때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조차 까맣게 잊을 정도로 정신없이 빠져들 수도 있다. 혼자 원망하고 괴로워하다 사랑을 놓쳐버린 남자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혹은 누군가의 미제가 되고 싶어서 흔적 없이 사라진 여자. 그들 사이의 비언어적 신호를 읽어내려면, 영화를 보면서 딴짓하지 않을 결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