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극한 직업, 바리스타

by 은수달


"제시간에 밥만 먹게 해 주세요."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육 개월 정도 일하다

우유부단한 매니저와 인정 없는 사장 때문에 그만둘 무렵, 집 근처 카페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매장 메뉴도 많고, 인수인계할 시간도 사흘밖에 안 되는데 괜찮겠어요?"

"조금 빠듯하긴 하지만 메뉴는 미리 외우면 되고, 포스도 잘 보는 편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바리스타를 꿈꾼 건 아니다.

커피를 좋아하다 맛있는 커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고,

근사하게 한 잔의 커피를 손님한테 내놓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궁금해졌다. 거기다 창업을 준비하기에 앞서 실전 경험이 중요하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멋있고 화려해 보이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우아하게 춤추기 위해 쉼 없이 스텝을 밟는 댄서와 같다는 걸 점점 실감하게 되었다.


커피나 음료를 만드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 재고관리부터 청소 등 각종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제법 그럴듯한 바리스타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한 달 일찍 들어온 동료 때문에 한 달 만에 좋아하는 일을 그만둘 뻔했다.


"이렇게 하면 매니저님한테 혼나요."

"지금 주문이 많이 밀려서 그런데 브레드 좀 만들어줄래요?"

"이건 **씨가 잘 만드니까 난 커피 내릴게요."

"포스 금액이 안 맞아요. 제대로 한 거 맞아요?"


먼저 입사했다는 명분으로 이래저래 간섭하면서 매니저랑 점장 눈치만 보더니, 정작 일손이 필요할 땐 경험이 없고 서툴다는 이유로 발을 뺐다.


"저도 처음부터 잘했던 것 아니에요. 자신 없어도 계속 만들어봐야 늘죠."


손님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교대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내게 일을 떠미는 동료한테 참다못해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동료의 태도에 지쳐 결국 점장님한테 사실대로 얘기하고 말았다.


"일이 서툴고 포스를 잘 못 보는 것까진 제가 참겠는데, 계속 저한테 떠넘기면서 요령만 피우잖아요."


점장님이 돌려서 좋게 얘기한 며칠은 도와주는 척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고, 성수기 때 빙수 10그릇씩 만들던 동료는 몸살을 핑계로 먼저 그만두었다.


평일에 손님이 많을 때면 밖에서 점심 먹기가 애매하다고 했더니, 점장님 어머니가 손수 만든 도시락을 배달해주겠단다. 덕분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고급 도시락을 거의 매일 맛볼 수 있었다.




수시로 매장을 둘러보며 쓸고 닦고, 손님이 불편할 만한 요소는 없는지 둘러보고, 음료도 정성을 다해 만드는 모습을 점장님도 눈여겨본 걸까. 매출이 떨어지고 주말에 유난히 컴플레인 많이 들어오자 비상책을 마련했다.

"곧 매니저도 그만둔다고 하니까, ** 씨가 매니저 맡는 건 어때요?"


그렇게 파트타임 5개월 만에 매니저로 승진했고,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 혹은 건의사항을 조심스레 제시했다.

"다들 바쁘고 힘든 건 알겠는데, 같이 일할 땐 톡 대신 얼굴 보고 직접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끼리 단합이 잘 되어야 매장 분위기도 살고, 손님들한테도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매장 크기에 비해 테이블 수가 지나치게 많아서 다니기도 불편하고, 손님이 적을 땐 너무 텅 비어 보였다. 그래서 점장님한테 건의해서 테이블 몇 개를 과감하게 빼고, 매장 내부도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영유아를 데리고 오는 손님들을 위해 베이비 시트도 몇 개 장만했다.


문제는 매달 신메뉴가 다른 매장에 비해 많은 편이라 그걸 익히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것이다. 거기다 주문량이 적은 음료는 재고가 남아서 처치곤란이었다.

"손이 많이 가거나 안 팔릴 것 같은 메뉴는 빼는 거 어때요?"

"그럼 본사에서 뭐라고 할 텐데... 우선 그렇게 해보죠."


예를 들어, 신메뉴 하나 만드는 데 5분 넘게 걸린다고 치자. 그 시간에 커피는 적어도 2~3잔은 만들 수 있다. 새로 들어온 직원이 새로운 레시피를 익히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며, 그걸 알려줘야 하는 기존 직원도 피곤하다. 주문이 밀릴 때는 음료를 잘못 만들거나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있으므로, 픽업 직전에 주문서를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손님의 유형이나 원하는 걸 먼저 파악하는 게 좋다.


우기는 사람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왜 우기는 지 들여다보면 의외로 문제 해결이 쉬울 수도 있다.


첫째, 본인이 아는 것이 틀림없다고 굳게 믿는 경우. 이럴 땐 원래 사실을 차분하게 알려주거나 그와 관련된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둘째, 한강에서 뺨 맞고 엉뚱한 데서 화풀이하는 경우. 이럴 땐 정말 노답이다. 그냥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하지만 마냥 받아주면 정도를 지나칠 수 있으니, 한 번쯤 따끔하게(?) 야단 칠 필요도 있다.


주말에는 시재금을 넉넉하게 준비하는데도 가끔 모자랄 때가 있다. 그런데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면서 잔돈 바꿔달란다. 시재금이 없다고 하자, 왜 자기만 안 바꿔주느냐고 화를 냈다.

"저희도 바꿔드리고 싶은데, 주말이라 잔돈이 없어요. 정 급하시면 아래층에 편의점 있으니까 거기 이용하시면 돼요."


하루는 포스 앞을 서성이다 쇼케이스 틈새에 실수로 카드를 떨어트린 손님이 있었다. 그런데 쇼케이스 전체를 분리하지 않으면 꺼낼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버렸다. 사정을 얘기하자, 아들이 만들어준 카드라 재발급받으려면 복잡하다며 당장 카드를 꺼내 달라고 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카드 꺼내드리려면 업체 불러야 하는데, 저희가 그 비용까지 책임질 순 없다고요."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던 친구가 더 난리였다.

"매장에서 벌어진 일이면 당연히 매장 쪽에서 책임을 져야지. 안 된다고 우기면 다야?"

'지금 우기는 쪽이 누군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으며 다시 한번 상황과 이유를 설명했다.




한 때,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일부 몰상식한 엄마들 때문에 선량한 다른 엄마들까지 욕을 먹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카페에도 이런 부류가 가끔 등장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바닥에 뭔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뭐죠?"

단체 손님이 우르르 빠져나간 뒤 테이블 바닥을 청소하려던 점장님이 외쳤다.

"과자 부스러기 같은데요. 커피도 쏟았네요. 근데 이건... 하..."

의문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내 표정은 저절로 굳어졌다.

"그냥 버려달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기저귀를 이렇게 바닥에... 너무하네요."

"그렇네요. 애 키우느라 힘든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한바탕 전쟁터로 변한 매장을 청소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아니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인류로서 창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면에 커피를 바닥에 쏟아서 미안하니 자기가 직접 닦겠다며 걸레를 달라고 부탁하는 엄마도 보았고, 고생한다며 가끔씩 간식을 건네주는 손님도 있었다.




바리스타로 일하게 된 이후, 다른 매장을 가게 되면 원하는 걸 정확히 요구하거나 불필요한 언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쓸데없이 휴지를 많이 들고 와서 심심하다고 부스러기로 만들거나 마감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눈치 없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소한 실수는 부드럽게 넘어가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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