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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닥터와 우영우 그리고 아몬드

by 은수달



요즘 전국이 '우영우'로 뜨겁다.


"섭섭한데요."


이 대사 때문에 여자 애청자들 마음이 설렜단다.


남자 주인공이 '섭섭하다'라고 했는데, 왜 설레는 거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영우'는 비상한 암기력 덕분에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유명한 로펌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녀 앞에 펼쳐질 풍파는 다른 인물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이나 차별 대상이 되어 온 주인공은 서번트 증후군 덕분에 취업에 성공하고, 직장에서도 남다른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업무 능력이 아니라 바로 의사소통. 타인과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이들에게 평범하게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건 세 살짜리 아이에게 여섯 살이랑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예전에 지능이 매우 높은 분을 만난 적 있다. 한두 번 본 내용은 사진처럼 정확하게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해력도 남달라 상대의 말을 빠르게 파악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매우 힘들어했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종종 좌절감이나 우울증을 겪곤 했다.


자폐 성향이 좀 더 강하고 좀처럼 타협을 모르는 <굿닥터>의 '숀'과 달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후 '우영우'로 줄임)의 주인공은 증상이 약하게 나타나고 타협의 여지가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나기엔 갈 길이 멀다.

드라마 초반부에서 영우가 타인의 감정을 공부하는 부분은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은 힘겹게 세상과 맞서 싸우지만, 도와주는 이들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영우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반감을 가졌던 멘토 명석은 그녀의 순수한 열정에 차츰 마음을 열고, 연민의 대상으로 여기던 남자 주인공 역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전체적인 구도나 기본적인 콘셉트는 드라마 <굿닥터>와 <우영우>가 유사하다. 의사로서 뛰어난 능력과 충분한 자질을 갖춘 닥터 숀은 연애라는 관문에 들어선 순간, 차원이 다른 고난을 경험한다. 영우 역시 여느 평범한 여성처럼 사랑과 결혼을 꿈꾸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환상은 시청자의 판타지와 많이 닮아 있다. 아무리 스스로, 혹은 상대가 '자폐 스펙트럼'을 개의치 않는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이들에게 가혹하다.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 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드라마 <우영우>가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폐아도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며 성과를 보여줄 수 있으니 똑같이 기회를 주자는 것일까. 아니면, 자폐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는 자신과 다른 개체나 문화에 냉소적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은 우리 사회가 살 만하며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외치고 싶었던 걸까.


영우의 아빠가 영우를 키우면서 외로웠다고 하는 말이 기억난다. 조카들이 서너 살 때까진 소통이 안 되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말이 통해서 덜 외롭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누군가의 무한한 이해나 사랑을 받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어쩌면 극 중 영우도 그러한 희망을 품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아몬드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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