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으로 왜곡하는 기억 vs의식적으로 조작하는 기억

by 은수달


인간의 기억은 특수한 과정을 거쳐 편집되고 재해석된다고 뇌과학자들이 그랬다.


그래서 아무리 기억력이 좋거나 평소에 기억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라도 순수하게 믿어서는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나의 사장님은 꼼꼼하고 기억을 잘하는 편이지만, 가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틀리게 기억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든다.


몇 년 전, 명절을 앞두고 사장님이 나한테 연락이 왔다. 본인을 회사에서 픽업해 사장님 댁으로 데려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와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사장님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사장님 못 보셨어요?"

곧바로 사장님한테 전화를 거니 집이라고 했다.

"저한테 사무실에서 모셔가라고 했잖아요?"

"아닌데? 집에서 사무실로 데려가라고 했는데?"


나한테 전달한 내용이랑 전혀 달라서 순간 당황했지만, 내 주장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내 이름으로 무통장 입금하고 나머진 통장에서 이체해."

몇 달 전, 사장님이 결제를 내게 맡기면서 두 건으로 나누어 송금하라고 부탁한 적 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내가 실수로 다른 방식으로 결제했다고 믿고 있었다. 다행히 별일 없어서 넘어갔지만, 가끔 다른 사람이 한 실수가 내 잘못이 되거나 사장님의 기억이 왜곡되어 내 탓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분명히 다른 회원이 건의한 안건이라고 얘기했잖아. 네가 오해할까 봐 일부러 자세히 설명해준 건데, 마치 내 탓인 것처럼 얘기하면 어떡해?"


오픈 채팅방 개설 여부를 앞두고 운영진끼리 회의를 거쳐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모임장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을 뿐, 몇 달째 개인적인 사정으로 운영에 손을 떼고 있던 K는 모임의 근황에 대해 묻기에 사실대로 알려줬는데, 화살이 내게 돌아온 것이다.


"모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까진 좋은데, 지금까지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나서는 이유는 뭐야? 네가 원하는 대로 안 흘러가서 어떤 식으로든 바꾸거나 정리하고 싶은 거 아냐?"


전부터 모임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며 정리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동안 힘들게 꾸려온 데다 모임을 지속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보류한 상태였다. 그런데 또다시 모임 정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거기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기억을 왜곡해서 책임을 나한테 묻고 있었다.


자기한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기 위해, 혹은 이익을 얻기 위해 기억을 수시로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인간이라서 때론 어떤 상황을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상대가 잘못했다고 비난한다면 누가 제대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방어기제가 강한 사람들은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상대의 표정을 살핀 뒤 거기에 맞춰 자신의 태도나 말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평생 가면을 쓴 채 살아갈 자신이 없다면, 가끔은 가면을 벗고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것도 힘들다면, 현실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용기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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