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금요일, 채팅방에선 연애와 결혼, 그리고 비혼에 대한 얘기로 뜨겁다. 나중에 남편 병시중 드는 대신 내 몸 관리나 잘하자는 비혼주의자, 더 나이 들기 전에 짝을 만나 결혼을 꿈꾸는 혼인주의자, 그리고 다수의 관심을 원하는 관종 솔로남.
법적으로 나의 보호자는 부모님이지만, 몸이 크게 아파서 신세를 진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릴 적에 뛰어놀다 턱이 찢어져 꿰매고, 이십 대 때 교통사고로 수술을 두 차례 받고 입원한 것 빼고는.
하지만 남편도 있고, 자식도 셋이나 있고, 손주도 있는 간장종지 엄마는 잔병부터 큰 병까지 가족들 걱정을 많이 시켰다. 오래전 디스크로 쓰러졌을 때, 충격받고 잠시 기억을 잃었을 때, 위에 이상이 생겨 시술을 받았을 때, 그리고 췌장에 이상 징후가 생겨 재검을 앞두고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난리 쳤을 때 등등.
그때마다 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를 달래느라 바빴고, 수술이나 검사를 앞두고 어린애처럼 벌벌 떠는 엄마를 달래느라 혼났다.
"수술받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걱정 마세요. 의사 쌤 실력 좋으니까 별일 없을 거예요."
"엄마 친구도 얼마 전에 췌장암 말기로 저 세상 갔단 말이야. 췌장암은 발견되는 순간 위험한 경우가 많대."
"그렇게 위험하면 병원에서도 당장 수술받자고 했을 거예요. 검사받기도 전에 병이 더 커지겠어요."
간장종지 엄마가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간 사이 양푼이 딸은 찰나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단체로 갔으니까 별일 없겠지? 엄마한테 며칠 전화만 안 오는데도 좀 살 것 같네.'
따로 사는데도 엄마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필요한 걸 부탁한다. 하지만 해외에선 통화가 힘들어 문자만 주고받았다.
엄마가 귀국하기 전날,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어서 순간 긴장했다.
[음식점 앞에서 넘어져서 머리를 살짝 부딪쳤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했대. 헛소리도 하고... 주위에서 걱정 많이 했다더라. 지금은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상황이 심각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다음 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찮은 것 같다.
"아무튼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이나 하더래. 뭔가 이상이 있는 거겠지?"
"순간 기억을 까맣게 잊었나 봐요. 그래도 지금은 기억이 나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병원 한 번 가봐야겠다."
이번에도 엄마를 안심시키는 건 내 역할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병원에 동행을 요청한다, 양푼이 딸에게.
몇 달 전, 특정 부위에 이상이 생겨 종합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그날 엄마한테 다른 일정이 있어서 여동생이 동행했다.
"엄마 따라왔으면 안절부절못해서 오히려 더 불안했을 거야."
"맞아. 당사자보다 엄마가 더 걱정하잖아."
엄마의 성격을 아는 우린 맞장구를 쳤고, 차분한 여동생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아프면 어떡하려고 그래?"
비혼을 외치는 딸에게 엄마는 종종 묻는다.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죠."
"그러다 진짜 후회한다. 더 늦기 전에..."
물론 아프거나 힘들 때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든든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꼭 배우자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배우자가 반드시 건강하리란 보장도 없다. 확률이 낮은 가능성에 기대는 대신, 난 열심히 일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틈틈이 재테크도 하면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