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도 직장처럼 욕먹거나 쫓겨나지 않을 정도로만하면 될 텐데... 다들 너무 애쓰는 것 같아.'
물론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했을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까지 결심했지만, 예비 시누이의 갑질 때문에 그만둘 뻔했던 여동생과 결혼 전부터 양가의 반대에 부딪쳤던 올케 역시 만만치 않은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형님도 의사 남편 만나셨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만 혼수로 트집 잡으시는 건데요?"
"어머님도 아들 성격 잘 아시잖아요. 저 아니면 누가 맞추고 살겠어요?"
애들 키우며 직장까지 다니는, 워킹맘 여동생은 보수적이고 깐깐한 시댁 식구들 앞에서도 당당하며, 일 년에 한두 번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시댁을 방문하며 잘 살고 있다.
일찍 독립해서 전문직으로 종사하는 올케 역시 조카가 두 돌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귀했으며, 집안 대소사에 적절히 참석하며 며느리 노릇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냥 애 키우면서 살림하면 좋을 텐데..."
"애 앞으로 돈 들어갈 일도 많을 텐데 계속 벌어야죠."
어머니는 올케한테 은근슬쩍 본인의 속내를 드러냈지만, 올케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저희는 친정에서 김장해서 김치 필요 없어요."
김장을 할지 고민하는 엄마한테 올케가 단호하게 얘기하자 이번엔 건너뛰기로 했다. 작년에도 엄마랑 아버지만 간단하게 김장을 했고, 출장이 잦은 올케는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네 생일에 스케줄이 어떻게 되니?"
"잠시만요. 근무표 한 번 볼게요. 그날 일하러 가는데 어쩌죠?"
"그럼 평일에 해야지."
신혼 때는 무뚝뚝하고 당찬 올케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엄마. 하지만 지금은 바쁜 며느님이 집안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서운한 게 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가능하면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십 년 가까이 올케 편을 들어가며 시어머니 교육(?)을 시킨 보람이 있다.
하지만 잘나신 의사 남편을 만나 딸을 낳은, 여동생의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시어머니한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손녀한테 예쁜 옷 입히라고 사줬더니 이상한 옷만 입히고 다니고... 다른 며느리들처럼 싹싹하거나 알뜰하지도 않고..."
친구 사이인 어머니한테 불평처럼 털어놓자, 어머니 왈 "아들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며느리는 오죽하겠어? 그냥 손주 잘 키워주고 아들한테 잘하는 걸로 만족해야 서로 마음 안 상해."
연인 사이처럼 고부나 장서 사이도 입장 차이에서 대부분 갈등이 시작된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그리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 텐데... 그것이 죽기보다 힘든 사람들도 가끔 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올케가 때론 여동생보다 편하게 느껴진다. 드러내 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서로 힘든 일이 생기면 말없이 도와주거나 편 들어주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거나 이간질하기 바쁜 것이 올케와 시누이 사이일 것이다.
결혼생활도 직장처럼 적당히, 눈치껏, 때론 당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좋은 며느리 혹은 사위가 되기 위해 억지로 기분 맞추거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지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