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김민섭 작가가 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책 제목에는 레비나스 식으로 말하면, 타자적 요소가 두 개나 들어 있다. 지방대, 그리고 시간강사.
"우린 취업 보장 못해주니 먹고살 길은 알아서 찾아."
지방대 문과 출신에게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아서 동기 대다수가 전과하거나 교직을 이수했다. 나 역시 꿋꿋이 나만의 길을 걷다가 결국 취업의 문 앞에서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지방대 콤플렉스와 불이익을 극복하려고 수도권 대학원에 문을 두드렸고, 하늘도 감동했는지 슬며시 열렸다.
"남녀공학 나오면 남학생들한테 밀려 취업 못할 가능성이 높아. 비교적 취업 잘 되고 평판도 좋은 **여대는 어때?"
우리가 명문대라 일컫는 스카이는 아니었지만, 학교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다는 걸 입학하고 나서야 실감했다.
그러나 모교 출신의 일부 유명인사가 물의를 일으켜 한동안 출신 학교를 숨겨야만 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거기다 혹시라도 최종 학력을 밝혀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주위 사람들이 위화감을 가질까 봐 고민하게 되었다.
"와, 좋겠다. **대 나온 여자였어요?"
"혹시 페미?"
"학부 때 공부 잘했나 봐요?"
질투와 경계심이 뒤섞인 질문들은 나의 입지를 재차 확인시켜 주었고, 지방대 출신이라는 그림자는 더욱 두드러졌다.
대학원 시절엔 타대생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고 온 힘을 다했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모난 돌이 정 맞을까 봐 저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문제는 영문학에 관심이 생겨 청강할 때 발생했다.
"우리 학교 출신도 아닌데 왜 굳이 오려고 해요?"
"스승의 날이라서 사은 행사 하기로 했어요. 회비 낼 거죠?"
"혹시 고향이 어디세요?"
대학원 졸업 후 막 고향에 내려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그 당시 내 말투엔 서울 사람 특유의 억양이 남아 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투는 자연스레, 아니 살아남기 위해 바뀌었다. 서울 사람도, 고향 사람도 아닌, 이방인.
만일 내가 박사 학위까지 받고 서울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시간강사는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도는 노마드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
우린 너무 쉽게 편 가르기를 하고, 자신과 다른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은근히 멸시한다.
그들 속에서 살아남거나 공존하려면, 좀 더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입을 다물거나, 싸우거나, 비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