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에서, 봉추

by 은수달


'왠지 막다른 길 같은데...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참 달려도 지도에 찍힌 곳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봉수는 오른쪽 귀퉁이의 녹색 간판을 본 순간 직감한다. 자신이 찾던 곳이 가까이 있음을.


S자로 굽은 도로를 지나니 언덕 위에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주차장부터 매장 입구까지 도보로 삼사 분. 그러나 오르막길이라 저절로 숨이 찬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가 보이다 말고 베이커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레몬 파운드케이크랑 넛 브라우니... 먹음직스럽게 생겼군. 근데 가격은 그다지...'

살짝 배가 고팠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아뇨. 아이스요."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든 순간, 직원의 명함에 적힌 이름 석 자가 눈에 띈다.

'어라? 봉추? 흔치 않은 이름인데?'

상대 역시 고개를 갸웃하지만 포스에 메뉴를 입력한 뒤 결제를 요청한다.

"주문하신 음료는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숙하다.


진동벨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매장을 둘러보는 봉수. 불현듯 방금 본 인물의 정체를 떠올린다.


김봉추.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봉수와는 사촌 지간이다. 어른들끼리 크게 싸우는 바람에 연락 끊긴 지 제법 오래되었다. 그전까지는 가끔 연락하고 지냈으며, 한동안 같은 집에서 살기도 했었다.



'아는 척이나 해 볼까? 날 기억 못 하면 어쩌지?'

세월은 의좋은 형제나 사촌마저 멀어지게 하지만, 우연한 만남을 모른 척하기엔 왠지 찜찜했다.


잠시 후, 진동벨이 '띠용 띠용'하고 울린다. 카운터로 향하자 마침 봉추가 픽업대에 서 있었다.


"저기... 혹시 봉추 형?"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봉추는 눈을 껌벅이더니 뭔가 기억나는 눈치다.

"봉... 수?"

자신의 이름이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봉수는 안도했다.

"맞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잠시만. 사촌동생이랑 얘기 좀 하고 올게."

그는 다른 직원한테 양해를 구한 뒤 봉수를 3층으로 데려갔다. 알고 보니 봉추는 근처에서 살고 있었고, 카페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었다.


"그렇게 됐어. 넌 어떻게 지내?"

"그렇죠 뭐. 일하고 나면 녹초 되어서 주말에 겨우 쉬어요."

"여기까진 어쩐 일로?"

"퇴근하고 집에 가려다 바람도 쐴 겸 왔어요. 이렇게 근사한 곳인지 몰랐네요."

"오는 길이 좀 험하긴 해도... 안은 제법 괜찮지?"

못 본 사이 달라진 봉추의 모습이 낯설어 얘기를 나누는 틈틈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었다.


"넌 결혼 안 해? 애인은 없고?"

대한민국 남녀노소 단골 질문이 드디어 등장했다. 봉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요. 요즘 골프 배우느라 바쁘거든요."

"역시..."

"뭐요?"

의미심장한 봉추의 표정을 보면서 봉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우리 또래 남자들이 많이 하는 스포츠이자 취미더라고."

"형은요?"

"난 돈도 시간도 없어. 대신 가끔 낚시나 등산하러 가지."

"형은 여전하네요. 예전에도 등산 좋아했었잖아요."

"좋아했다기보단 운동삼아 한 거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취미가 되었고."

"어쨌든 보기 좋네요.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고요."

"그래. 너도 별로 안 변했어."

"저도 곧 마흔이에요."

그 말에 봉추는 희미하게 웃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뭔가를 이루지 못하면 초라해지는 나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느새 붉게 물든 창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늑대와 개의 시간이 가덕도를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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