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7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보면서

by 은수달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연차 냈어요."

"너도 몸이 안 좋니? 어디?"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회사일부터 집안일까지 세세한 사정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삼 남매를 키우며 사업까지 꾸려온 간장종지는 슈퍼워킹맘이다. 거기다 자식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서 나를 비롯해 동생들은 조기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요리조리 엄마의 감시를 피해 가며 하고 싶은 일을 틈틈이 했지만, 여전히 우린 간장종지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누나 조만간 터질 것 같은데?"

수시로 수달 하우스를 드나들며 본가보다 더 편하게 여기는 간장종지를 옆에서 지켜보던 남동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직은 견딜 만 해. 그리고 나름 대책을 세워뒀어."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 등장하는 엄마도 간장종지 못지않은 극성이지만,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려 노력한다. 거기다 딸의 과외를 위해 강사한테 도시락을 갖다 바친다. 간장종지도 운동하는 아들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열혈 엄마를 자청했고, 공들여 키운 아들이 고생하는 게 싫어서 가업을 물려준다는 명분으로 본인의 울타리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대부분 2세가 그렇듯 1세의 기대를 채우기란 쉽지 않다. 나름 노력하는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남동생은 결국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고,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금리가 미친 듯이 날뛰자 부모님 사업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투자를 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아버지와 지금은 현상유지라도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엄마.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끼여 눈치만 살피는 양푼이 딸.


가족이 항상 우선이었던 엄마는 가족한테 배신당하고 실망하자 일에 더욱 매달리고 집착한다. 하지만 사업 역시 뜻대로 되지 않자 우울증과 신경증이 심해지고, 애꿎은 아버지한테 화풀이하거나 딸한테 하소연한다. 드라마를 굳이 볼 필요가 없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으므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신파 분위기가 풍기면 채널을 돌린다.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거나 감동을 강요하는 건 질색이기 때문이다. 연인이랑 헤어진 후 울고불고 난리 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자 주위에선 매정하단다.


'줄다리기처럼 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매일 가슴 졸이며 살아봐요.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거나 생계 때문에 허덕이면 그런 걸 느낄 겨를도 없다고요.'


부유한 집안에서 고생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은 외동딸. 그것이 바로 나에 대한 첫인상 중 하나이다.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을 상대적으로 덜 겪은 건 맞지만, 아예 모르고 자란 건 아니다. 비련의 여주인공 못지않은 풍파를 겪었으니 세상은 공평한 걸까. 아니다. 부모님 간섭 없이 곱게 자란 사람도 있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린 행운아도 분명 있다.


어쨌든 간장종지의 불안과 신경증이 잠시라도 가라앉길, 세상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기대 앞에 주눅 들거나 좌절하는 대신 든든한 울타리 삼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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