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8

by 은수달


"얼마 전에 사주 보고 왔는데 너보고 남자 조심하라더라."


요즘 회사일 때문에 심란했는지 철학원에 다녀왔다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흘리며 은근슬쩍 충고한다. 그러면서 최근에 만나는 사람은 없는지 묻는다.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동생은 있어요."

"뭐 하는 사람인데?"


또 시작이다.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거라 의심하고, 있다고 하면 신상 털기에 바쁘다.


'내가 대기업 회장 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왜 그리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걸까?'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의문이 쉽게 끝날 리가 없다. 적당히 오리고 붙여서 엄마의 호기심을 달래주기에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한다.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점에선 여느 중년 여성들과 다름없지만, 간장종지의 의심과 집착은 때로 도를 넘어 현실에서도 막장 드라마를 찍으려 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뿐.


이사한 지도 어느덧 한 달째. 처음엔 간장종지가 수시로 나의 집을 드나들며 주인 행세를 하려 들더니 차츰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꾼 뒤로는 방문 전에 연락하는 매너(?)도 보여주어서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우리 엄마도 나이 들더니 바뀌려나 보다.'

하지만 속단은 절대 금물. 긴장은 기본 옵션.


어느 평일 저녁, 애삼이랑 홈 데이트를 즐기던 중이었다. 간장종지가 바쁜 틈을 타 잠깐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는데, 예고 없는 방문이 오붓한 분위기를 한 순간에 깨트리고 말았다.


"네가 감히 우리 딸을..."이라고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신상정보를 묻는 엄마의 말투엔 그런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고, 저랑 성격이랑 마음도 잘 맞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니?"

"아뇨."

"그 사람은?"

"제 의사 존중해 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에요."


엄마의 반응을 살피며 애삼이를 옹호하느라 속으로 진땀 흘렸지만, 당당해지려 노력했다.


'이 나이 되도록 연애도 마음 놓고 못하고... 큰딸이 평생 외롭게 늙어가길 원하는 걸까?'


학창 시절부터 간장종지의 간섭과 집착이 유난했기에 삼 남매는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며 몰래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면 가까이하지도 말고, 결혼할 사람 아니면 연애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간장종지의 요구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시작하거나 부모 허락받고 연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나름 의식이 깨어있는 줄 알았는데, 자식 앞에선 전형적인 유교 엄마다. 본인 신념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딸과는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나요, 간장종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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