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종지 엄마와 양푼이 딸 #9

by 은수달


"이제부터 마음껏 엄마를 미워하기로 했어."


자녀가 부모로부터 상처받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라고 누군가 그랬다.

미워하기, 맞서 싸우기, 그리고 가출하기.


위 세 가지 방법 다 시도해 보았지만, 일시적인 효과만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불편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므로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얼마 전, 큰 다툼을 계기로 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랐던 마음은 간장종지의 이기심과 피해의식 때문에 소리 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론 엄마를 마음 편하게(?) 미워하기로.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는 좌절감은 아이의 자존감을 낮게 하거나 죄책감을 심어준다. 종일 공부하다 잠시 머리를 식혔을 뿐인데 부모 눈엔 마냥 노는 걸로 보이고, 오랜만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엄마 눈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는 걸로 비친다. 모든 간섭과 감시는 '보호자'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고,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에겐 이를 거부할 힘이 거의 없다.


어릴 적부터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사생활 침해를 극도로 싫어했기에 간장종지가 양푼이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물쇠를 걸고 방문도 잠그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떻게든 양푼이의 삶에 관여하고 싶었던 간장종지는 온갖 핑계를 대가며 간섭을 걱정으로 포장했다. 간장종지의 시선과 침해가 끼어들기 힘든 곳으로 탈출했지만, 밥벌이라는 명분이 양푼이를 그녀 곁으로 이끌었고, 비극도 시작되었다.


'단 며칠 만이라도 엄마의 잔소리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러나 자식도 독립된 인격체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걸 간장종지는 좀처럼 인정하기 싫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키워주신 건 감사하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요.)


'친구 아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엄마한테 잘하기만 하더라.'

(제 친구 엄마는 아낌없이 지원해 주면서도 친구한테 바라는 것 없이 사생활 존중해주고 있어요.)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 부모가 자식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본인들 마음 편하려고, 부모 노릇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아닌가요.)


과거의 안 좋은 경험 때문에 여전히 트라우마나 공포에 시달리는 엄마가 안쓰러울 때도 있다.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려고 수천 번은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힘든 점들이 많다. 그중 가장 최악은 자식들끼리 비교해서 상처 주고, 심지어 경쟁을 시킨다는 점이다.


"여동생이 애들 키우느라 일하느라 고생하는 건 저도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조카들 올 때마다 매번 불려 가서 놀아주고 돌봐주느라 지쳤어요."

"이모가 되어서 그 정도도 못하니? 내가 널 부려먹으려고 부르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어울리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결국 나의 항변은 투정으로 비추어졌고, 간장종지 나름의 논리(?)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에게 본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얘기해 봤자 벽에 달걀을 던지는 꼴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던 달걀은 형체도 없이 깨지고 무너진다. 그래도 자기 연민은 무용지물. 타인동정도 상황 따라.


전혀 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 득 보다 실이 많았던, 양푼이의 마음이 더 굳게 닫혀버린 전쟁이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보자. 하고 싶은 말 꾹꾹 눌러 담다 엉뚱한 순간에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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