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글쓰기에 영감을 주는 것들

by 은수달


글을 쓰다 보면 다양한 지식뿐만 아니라 경험이 필요할 때가 많다.


로맨스를 쓸 때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경험이, 스릴러를 그릴 때는 공포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이, 코미디를 그릴 때는 배꼽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이나 농담을 주고받은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된다.


[해외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직접 가서 취재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글쓰기와 관련된 어느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럴 땐 배경에 대한 사전 조사를 좀 더 철저하게 하는 편이에요. 관련된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역사적 배경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서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죠]




몇 년 전, 웹 소설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소설 배경이 영국의 어느 도시였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그곳에 한 번도 가본 경험이 없어서 관련된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면서 참고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여행자의 관점에서 그 도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수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 적도 있다. 평소에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는 데다 배경지식도 부족한 편이라 마치 수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처럼 참고문헌을 뒤져가며 공부했다. 덕분에 애완동물의 특성 및 기르는 방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나름 다양한 연애를 경험한 덕분에 로맨스 소설은 좀 더 수월하게 쓸 수 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리얼리티나 개연성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실제 경험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를 끌어다 쓸 때가 많다. 몇 달 전, '혼족'이라는 주제로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데다 현실적인 캐릭터라 몰입이 많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고 뿌듯했다.




캐릭터를 그리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건 캐릭터가 스토리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등장인물들이 개성 강해도 스토리와 따로 놀면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반면에 스토리는 단단한데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하면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해진다.


다양한 직업 경험도 캐릭터를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취업과는 거리가 먼 전공 때문에 이직을 자주 해서 한때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것이 꿈이었는데, 요즘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진 데다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했는데도 사장이 월급을 안 주고 도주하는 바람에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피부로 실감한 적도 있고, 직원들한테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교묘하게 계약서를 작성한 직장도 있었다.


나이 때문에 여기저기서 거절당하다 보니 자괴감이 든 적도 있었고, 지방대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무시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다.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대기업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조직 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다양하게 경험해봐서 그런지 공감이 잘 되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52973


무엇보다 내게 영감을 많이 주는 것은 여행길이나 이동하는 중간에 떠오르는 소재나 아이디어이다.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현지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완성한 적도 있고,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에세이를 쓴 적도 있다. 매일 듣는 음악도 글쓰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밝은 분위기를 그릴 때는 경쾌한 음악을, 차분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묘사할 때는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골라 듣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토록 재즈 음악을 즐겨 들었는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에 글을 쓰면서 즐겨 듣는 음악은 ‘레이어스 클래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이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클래식을 그들만의 색깔로 변주해서 잘 표현했으며, 특히 글 쓸 때 집중하기 좋은 것 같다.


https://youtu.be/mBux318K_Vk

[Flower Dance Epic Acoustic Ver. by 레이어스 클래식]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모임도 글쓰기 소재를 얻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각자 타고난 성향이나 라이프 스타일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고민하거나 느끼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이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알게 되고, 그것들이 글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기도 한다.


한 번은 연애를 주제로 질문들을 만든 다음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평소엔 잘 느끼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점들이 구체적인 질문들을 통해 가시화되었고, 생각이나 취향의 차이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질문 중 하나가 '썸 탈 때 스킨십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이다. 잠자리까지 가능하다는 답변부터 연애를 시작해야 스킨십이 가능하다는 답까지 그 범주가 넓었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0462878


무엇보다 내게 가장 중요한 영감을 주는 이들은 훌륭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소외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는 여러 면에서 내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필사하고 관련된 소식을 접하면서 소설가 혹은 작가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더불어 방향성에 대해서도 본받게 되었다.


단지 돈을 많이 벌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혹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서 글을 쓴다면 작가로서의 수명이 얼마나 될까. 또한, 자기 세계에 너무 심취해 독자와의 소통을 거부한다면 진정한 작가라 말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난 산책을 하면서,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면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다.


그것들이 얽히고 빚어져 어떤 형태의 작품으로 탄생할지는, 스스로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