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사모님 말고 고객님

by 은수달


"사모님, 시공 언제 가능하세요?"


며칠 전, 욕실 선반이 앞으로 살짝 기울면서 떨어질 것 같아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직원 둘이서 낑낑거리며 선반을 일단 분리한 뒤 베란다에 보관해두기로 했다.


시공업체에 연락하니 하자보수 기간이 지나서 개인적으로 수리하란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나름 평가가 괜찮은 업체를 수소문했다. 전화를 거니 받지 않아서 사진과 함께 문자를 남긴다. 상태를 알려주니 시공비가 대략 얼마 든단다. 그러면서 공사가 언제 가능할지 물어보았다.


이십 대 때 동생들과 소형 아파트에 거주한 뒤로는 주로 오피스텔과 아파트에서 살았다. 짐이 많은 데다 주차, 관리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오피스텔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사하려고 부동산에 전화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면 어김없이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저 사모님 아닌데요...'라고 얘기하다가 이젠 일일이 반박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 호칭은 부동산에서뿐만 아니라 관리소 직원, 수리업체 사장님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사장님도 아니고 사모님이라니... 아파트에 사는 어른 여자는 다 사모님인가? 차라리 사장님이나 고객님이라는 호칭이 낫겠다.'




"생각보다 동안이시네요."

"사모님인 줄 알았는데 아가씨였네요. 죄송해요."


부동산 중개인과 통화만 하다가 실물을 보여주면 어김없이 둘 중 하나의 멘트가 날아온다. 의외성이 주는 소소한 반전과 그에 대한 반응을 즐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운전은 또 다른 분야이다. 출퇴근용으로 구입한 자가용이 하필이면 국내 경차랑 닮아서 종종 오해를 받는다. 오해로 그치면 좋으련만... 대놓고 무시하거나 칼치기하는 차들부터 이유 없이 긁고 지나가는 사람, 뒤에서 위협하는 차들까지. 나의 애마는 그렇게 위태롭게 도로를 질주해야 한다. 가끔 경차로 오해받아 주차비나 통행료를 할인받기도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심리가 강하고 어릴 적부터 경쟁하면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에 대한 기대가 높고 타인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편이다. 남자는 신체적으로 강하고 여자는 약하며, 벤츠 등 외제차를 모는 사람들은 돈을 잘 벌고 원룸에 사는 사람은 가난하다... 이런 식의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개개인을 끼워놓으려고 한다. 하우스푸어, 카푸어, 7포족 등 온갖 신조어를 만들어 구분 짓기 하고, 자신은 거기에 속하지 않음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적어도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나 기업이라면,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신분이라면 이러한 프레임에서 가능한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호칭 하나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한다면 적어도 편견이 적은 호칭을 쓰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글을 쓰면 쓸수록 오래된 경험이나 환경이 또 다른 고정관념을 만들어낼까 봐 두렵다. 나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습관이나 가치관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불편하게 할까 봐 조심스럽다. 스스로 경계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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