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커피 마시고 집에서 같이 티브이를 보던 애삼은 시계를 보더니 갈 준비를 한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과 얼른 보내고 혼자 쉬고 싶은 마음의 갈림길에 섰지만, 덤덤하게 그를 보내준다.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실컷 자고 일어났는데도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집에서 쉬면서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주말에 혼자 바람 쐬러 갔는데 주위엔 온통 가족이나 연인들일 때.
하지만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다. 장기간 입원이나 감옥이 괴로운 이유는 홀로 있을 시간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교통사고로 다인실에 입원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수시로 간호사가 찾아와 혈압 재거나 주사를 놓고, 먹고 자는 것조차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면 뭐든 같이 하고 싶고 좀 더 자주 보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피곤하고 바쁜 상대를 억지로 불러내 같이 시간을 보낸다면 서로한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몇 번째예요?"
연애할 때 종종 듣던 말이다. 챙겨야 할 사람도 많고, 투잡 쓰리잡하느라 지쳐있던 내게 상대의 투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럴수록 난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의 무심함 때문에 서운하고 힘들어했을 상대의 마음이 보였다. 그 뒤로 상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면 스트레스받거나 괜스레 짜증이 난다.
학창 시절에도 사생활이 방해받는다 싶으면 문을 꼭 잠그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향 이면에는 은둔자 성향도 공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타인에게 내 시간과 감정을 의지할수록 외로움은 더욱 짙어진다. 누구도 온전히 내 삶을 책임지거나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유 시간을 요구하는 상대한테 나만 봐달라고 투정 부리거나 애정을 호소하는 대신, 한 번쯤 쿨하게 내버려 두면 어떨까. 물론 동굴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생명체는 예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