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신을 앞두고 일정 조율하느라 K 장녀는 바쁘다. 이번에도 각자 비는 시간이 달라서 어렵게 일요일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아직 식사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 어디서 먹을지 물어보면 다들 대답을 망설이는 성향이라 이번엔 내가 미리 정하고 의사를 물어보았다.
"근처 고깃집 어때요?"
미식가 아버지와 조카의 입맛도 만족시키고, 무엇보다 본가랑 아주 가깝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시간이랑 장소를 정해 예약하고 단톡방에 공유해 버린다. 휴. 이번 어버이날은 별일 없이 지나가겠지.
몇 년 전, 유난히 시간이 맞지 않아 억지로 일정을 잡은 후 시내의 음식점을 예약했다. 그런데 갑자기 당일에 친구분들과 약속 있다는 아버지.
"엄마한테 얘기 못 들으셨어요?!"
알고 보니 엄마가 아버지한테 약속 날짜를 알려주는 걸 깜박한 것이다. 다시 날을 잡자는 엄마를 설득해 아버지 없이 어버이날을 보내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장유유서의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부모님이나 어른들 위주로 기념일이 정해지거나 분위기가 흘러간다. 직장 내에서의 꼰대 문화도 그러한 풍습 중 하나일 것이다. 어린이날은 어린 자녀들을 위한 날이지만, 어버이날은 어버이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챙겨야 한다. 거기다 생신에 명절, 제사 등을 합치면 일 년에 집안 행사만 열 번 가까이 된다.
"어린이날이랑 어버이날을 가족의 날로 합치고, 명절도 일 년에 한 번만 지내면 좋겠어. 그리고 날짜도 서양처럼 무슨 달 몇째 주 무슨 요일... 이런 식으로 정해놓으면 기억하기도 편하고 매번 일정 잡느라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고..."
계획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엔티제에게 매년 날짜가 바뀌는 명절과 부모님 생신은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어른들 입장에선 어쩌다 한 번 돌아오는 날이지만, 자식들 입장은 다르다.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지, 선물은 뭘로 하면 좋을지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안 들어도 되는 잔소리까지 덤으로 듣고 나면 피로도 두 배로 쌓이는 것 같다.
어쨌든, 전통이나 풍습을 쉽게 바꿀 순 없으니 좀 더 효율적으로 지내는 방법을 궁리하는 게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