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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 오지라퍼와 잃어버린 주말

by 은수달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특이한 돌변변이예요."

"내가 보기엔 달님이 제일 정상 같아요."


조카들이 방학을 맞이해 고향에 내려왔지만, 토요일엔 선약이 있어서 일요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차가 막힐 걸 고려해 여유 있게 출발했지만, 오랜만에 조카들을 본다는 설렘보단 오지랖퍼 간장종지의 잔소리가 신경 쓰였다.


"날도 더운데 원피스 입고 오지."

"별로 안 더운데요."

"그 옷이 더워 보여서 그래. 전에 산 원피스 있잖아."

보자마자 옷차림에 태클 거는 간장종지한테 적당히 대꾸하고 조카와 놀아준다.


점심으로 고기와 볶음밥을 먹는데, 전날 다 같이 골프를 쳐서 그런지 식사 내내 골프 얘기가 이어진다. 적당히 맞장구 쳐주지만 소외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식구들이 백화점에 간 사이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 오랜만에 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푼다.


"6시에 횟집 예약했으니까 시간 맞춰 아버지 모시고 와."


"요즘 세상에 하이패스 안 쓰는 사람이 어딨 니? 아직도 안 달았어?"

전에 쓰던 단말기가 하이패스 카드를 인식 못해서 새 걸로 바꾸려 했지만, 생각보다 비용도 들고 번거로워 교통카드를 쓰는 중이다. 옆에 동승한 아버지가 그걸 보고 폭풍 잔소리를 한다. 운전을 하는 당사자가 불편을 못 느끼는데, 어쩌다 한 번씩 타는 동승자들은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삼십 년 가까이 단골인 횟집에 방문하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장난감 조립하느라 여념 없는 막내조카. 못 본 사이에 제법 의젓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애매해서 갑자기 우리 집으로 들이닥친 식구들. 나오기 전에 대강 정리하긴 했지만, 오지라퍼들 눈에 거슬리는 건 없을지 걱정되었다.


"집이 왜 이렇게 덥니? 에어컨 좀 틀지? 손님 왔는데 시원한 것도 좀 내오고."

이제 막 도착해서 에어컨 틀고 다과 준비하려고 하는데, 참을성 부족한 간장종지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욕실 앞에 이 매트는 좀 아닌 것 같아."

여동생의 간섭이 시작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동생과 조카들은 한 번씩 고향에 와서 손님 대접받고 가면 그만이지만, 부모님 가까이 사는 나와 남동생은 수시로 불려 가거나 돌봐줘야 한다.


손님 혹은 가족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주로 머무는 사람이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상 최대 오지라퍼들 때문에 수달의 황금 같은 주말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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