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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미한 편식

by 은수달


"열심히 먹여도 보람이 없네. 통통한 모습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


어릴 적부터 편식주의자로 유명했기에 엄마를 포함한 어른들은 돌아가면서 잔소리하거나 겁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가려 먹으면 나중에 병들거나 키 안 큰다."

키가 평균보다 작은 건 맞지만, 가려 먹어서 병이 든 적은 없다. 무리하게 먹다가 탈 난 적은 많아도.


나는 자칭 타칭 미식가이다. 아버지를 닮아 미각이 타고나기도 했고, 몸에 이로운 음식을 본능적으로 골라먹는다.


육식파 아버지 때문에 고기를 충분히 섭취했고, 해물과 채소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골고루 먹었다. 거기다 외가가 농사를 지어서 유기농 채소로 만든 음식을 남 부럽지 않게 먹기도 했다.


타고난 입맛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상태가 안 좋은 건 귀신 같이 알아냈으며, 특히 화학조미료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가공식품을 먹으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생마늘이나 고추는 꿈도 못 꾸고, 캡사이신을 먹으면 속이 쓰리거나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인지 조미료를 적게 쓰거나 담백하게 요리하는 음식점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어느새 맛집 탐방가가 되어 있었다.


편식하는 습관(?)은 특히 커피 향미를 배울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견과류, 말린 과일, 시트러스 등의 미세한 맛의 차이를 남들보다 예리하게 발견했고,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점을 빨리 익혔다.


"평소에 싱겁게 먹는 분들이 커피의 섬세한 맛을 잘 느끼는 편이에요. 커핑 대회를 앞둔 분들은 일부러 싱거운 음식을 골라 먹거든요."


국도 찌개도 즐기지 않는 편인 데다 입맛이 없을 땐 샐러드만 해먹은 적도 있다. 더위를 많이 타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밥을 먹기 싫었고, 만사 귀찮을 때는 면 종류가 안 내켰다. 한때는 케이크 종류를 못 먹었고, 햄버거 먹다가 탈이 난 뒤로는 한동안 멀리하기도 했다.


특정 음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으면 그 음식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단다. 그리고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어도 반복해서 먹다 보면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편식하는 자녀 때문에 고생한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먹게 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식사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잔소리하면 아버지는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라. 억지로 먹다가 탈 난다.'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처럼 특정 음식만 선호하는 아이들에겐 식판에 먹을 만큼 덜어주고, 가능한 다 먹도록 유도하면 좋다. 입맛 없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억지로 먹이는 것보단 배가 고플 때까지 놀아주거나 기다려주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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