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독일상 훔쳐보기 10화

10. 너무나 많은 여름이

by 은수달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날 때 세상에는 지혜가 가장 흔해진다고.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혜를 모을 때라고. 평범하고 흔한 그 지혜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실수로 쏟은 커피는 그녀의 스커트를 짙은 갈색으로 물들였다.

"아...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커피라서 쉽게 지워지지도 않을 텐데..."

"우선 화장실에 가서 지워볼게요."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까. 그녀 앞에서 바보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녀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이 며칠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대강 얼룩은 연해졌어요. 덕분에 작품이 되었네요."

그녀는 속상함을 감추며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세탁비는 제가..."

"귀한 옷이긴 하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대신 갈아입을 옷 좀 골라줄래요?"

다행히 쇼핑몰이 근처에 있어서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와 단둘이 쇼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한테 옷 선물을 하게 될 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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