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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Mar 14. 2022

12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한테 시집올래요?"

몇 년 전, 설거지부터 정리정돈까지 내 맘에 쏙 들게 하는 연인한테 무심코 물은 적이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의 가장 큰 실수이자 비극은 아내라는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걸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주위에서 그렇게 만든 건지도)


나이가 차면 주위에선 남녀 상관없이 '결혼'이라는 주문을 건다. 하지만 요즘엔 결혼 적령기를 콕 집어 얘기하기 힘든 데다 비혼을 선언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남자는 치솟는 물가와 감당하기 힘든 집값 때문에,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급작스레 바뀔 환경이나 경력단절의 두려움 때문에.


오래전, 어느 방송에서 십 년 넘게 항공사에서 일해 온 여성이 '아이를 가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 물론 부부의 행복이나 자녀 출산 계획도 중요하지만,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녀 때문에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를 자발적으로(?)으로 포기한다는 것이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주위에서 소개를 받거나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고, 온갖 역경을 딛으며 결혼에 성공해서 자녀를 낳는다. 그리고 그 자녀를 남 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누군가는 육아와 살림을 도맡고, 다른 누군가는 더 열심히 번다. 하지만 대한민국 땅에서 자녀를 사람 구실 할 때까지 키우고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자본과 희생이 필요할까.


오죽하면 요즘엔 여자(혹은 처가) 덕 보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남자들이 많겠는가!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남성을 본 적 있다. 자녀 양육에 본인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부부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직장일은 남자한테, 집안일은 여자한테 좀 더 많은 무게가 실린다. 꼭 집안일을 꼽지 않더라도 돌봄 노동 대다수가 여성이 맡고 있다.


Photo by Scott Umstattd on Unsplash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려면 공부 잘해야 한다!"


위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으며 속으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왜 좋은 남자 만나려고 공부해야 하지?'


어쩌면 엄마는 형편 때문에 못 이룬 대학 진학의 꿈을 나를 통해 이루고, 평생 가사와 육아, 회사일이라는 3종 세트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딸들한테는 되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여동생은 욕심 많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의사 남편 만나서 큰소리치며 살지만, 욕심 별로 없고 꿈을 좇는 난 혼자 외롭게 살아간다며 불쌍해하신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물론 억대 연봉을 받는 부자가 되거나 부자 남편을 만난 건 아니지만,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며 밥벌이 열심히 하고 있고, 매일 글 쓰고 자기 계발하며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일인 가구로 살아가며 때론 어려움에 부딪치거나 만사 귀찮아서 집안일을 팽개치기도 하지만, 당장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니 그나마 다행일까.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거나 보살핌을 받고 싶어서 결혼을 원한다고 얘기하는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아내(wife)가 아니라 가정부(housekeeper)의 역할이 아닐까. 요즘엔 남편들도 아내만큼 해야 할 역할들이 많다. 돈 벌어야지, 양가 부모님 챙겨야지, 틈틈이 가사나 육아해야지... 그나마 배우자가 경력 유지하며 맞벌이를 한다면 덜 막막하지만, 외벌이로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어깨는 두 배로 무거울 것이다.


내가 좀 더 능력이 생겨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면,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귀가하면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며, 때론 뭉친 근육도 풀어주는 그런 아내가.


기왕이면 말 잘 듣는 귀여운 아내가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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