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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Mar 09. 2022

11화 오구오구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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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기특하거나 귀엽게 보일 때 암호처럼 쓰는 네 자리 숫자다.




내 주위 사람들과 반려동물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는 사실과 누군가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


오늘 오후, 조카를 돌봐주기 위해 남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초딩 조카가 발 벗고 달려온다.

"어, 토끼다!"

지난번에 나의 앞니를 발견한 조카님이 나더러 '토끼' 닮았단다. 뒤이어 반려견 초코도 모습을 드러낸다.


좌조카 우초코. 양쪽에 귀요미들을 두고 번갈아가며 '오구오구' 해주느라 바쁘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익숙하지만, 가끔은 나도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은 대체로 여자보단 남자가 더 강한 것 같다.(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요리에 관심은 많지만 자신 없다던 보프님은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배우고 싶다고 했다. 차근차근 레시피를 알려준 뒤 직접 실습할 기회를 주면서 틈틈이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그러자 용기를 얻었는지 다른 요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본인이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고, 손님이 대신해줘도 마음에 안 들어 나중에 다시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라면 처음엔 서툴고 상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게 알못인 내게 조카님은 게임에 대해 설명하느라 바쁘다. 혹시라도 이해 못 할까 봐 차근차근 알려주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나의 어머니는 완벽주의자라 대부분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차고, 혼자서 잘할 수 있는 일도 본인이 나서려고 한다.

"알아서 할게요. 네비 보고 따라가면 돼요."

특히 운전할 때는 특유의 불안 모드가 작동해 운전자한테 계속 스트레스를 준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나 적성이 다르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상대도 당연히 잘할 거란 기대 혹은 요구가 지나친 바람이 아닐까. 어느 드라마에서 안정되고 풍족한 삶을 배우자에게만 요구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당신은  나은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오늘 하루 당신 주위의 누군가에게 '오구오구' 하면서 격려나 칭찬을 해보는 건 어떨까. 평소에 집안일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도 못 이기는 척 청소라도 돕겠다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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