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이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악의적 의도는 없었고, 그녀를 북돋아 줄 생각이었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 여인은 그의 논평을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틀 후 바로 그 평론가의 논평이 신문에 실렸다. <그 젊은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젊은 여인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소묘를 들여다보고 낡은 화첩을 뒤적거렸다.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아직 작업 중인 것들까지 전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물감 통의 뚜껑을 닫고 붓을 씻은 다음 산책하러 나갔다.
그날 저녁 그녀는 초대를 받았다. 사람들은 비평을 외우고나 있는 듯이 그림들이 첫눈에 일깨우는 호감과 많은 재능에 관해 연신 말을 꺼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들으면 뒤편에서 나지막이 주고받는 소리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젊은 여인은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사실이에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 깊이가 없어요.」
그다음 주 내내 그녀는 전혀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말없이 집 안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깊은 바닷속에 사는 무지막지한 오징어처럼 나머지 모든 생각에 꼭 달라붙어 삼켜 버렸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제목만 알고 실제로 읽어보지 못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다. 도입부부터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역시 고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때론 우리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기도 한다. 예술가라면 피해 가기 힘든 평론가의 해석이 오히려 작품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지금 난 어떤 깊이를 강요받고 있는 걸까?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이? 업무에 대한 깊이? 아니면 인간관계의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