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위험에 처한 이 세계가 과연 우리의 세계인지,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의지가 나의 의지인지 그 경계에 대해 답해야 한다. " -알라딘 책소개 중
"파견자는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아가는 직업입니다. 무언가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합니다." (41쪽)
태린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지상으로 가고 싶은 것일까. 지상을 얻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 지상을 쫓는 사람을 갈망하는 것일까. (47쪽)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은 '타자성'이라는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들고 있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범람체들'이라고 정의 내린 후 과연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이미 수많은 개체의 총합. 하나의 개체로는 너희를 설명할 수 없어. 네 안에는 다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어. (183쪽)
인간의 범람화는 다른 생물의 범람화와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인간은 범람체에 노출되면 뇌가 변이 된다. 대신 뇌를 제외한 신체는 변하지 않은 채로, 오직 광증만이 발현된다. (187)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연상시키는 위의 구절을 통해 우리 안에는 수많은 개체가 섞여 있으며, 지나친 동일시야말로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원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인간이 아닌 것이 자아를 지닌 것처럼 흉내내기는 생각보다 쉬워. 하지만 정말로 네가 그걸 자아를 가진 존재로 대하는 건 다른 문제야. 우리에겐 뭐든 의인화하려는 습성이 있지. 하지만 때로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해." (108)
현대인은 수많은 역할을 요구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때론 진짜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헷갈리거나 잊어버린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인간이 될 수는 없듯이, 우리가 뭐든지 의인화하려는 습성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420)
우리의 유전자는 머나먼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왔고, 우리는 단일한 객체가 아니라 복합적인 성격으로 이루어진 주체라는 사실을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지구 끝의 온실>에 이어 김초엽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살아갈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서로 증오하거나 짓밟는 세상에서 타자성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