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점을 먹고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며칠 전부터 특정 부위에서 피가 난다고 해서 걱정되었는데, 갑자기 출혈이 심해진 모양이다.
"응급수술받아야 한단다. 일단 휴지랑 세면도구, 슬리퍼 좀 챙겨 올래?"
수술받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생각나는 대로 입원 시 필요한 비품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참 아버지한테 전화부터 해야지.'
아버진 아침 일찍 출근해서 엄마가 따로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상황을 알린 뒤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는 안 돼요."
간호사실 입구에서 보호자라고 얘기하자 짐만 두고 가라고 했다.
"잠시 얼굴만 보면 안 되나요?"
망설이던 간호사는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엄마가 내렸다.
"수술 금방 끝난단다. 참 휴대폰 충전기 사야 하는데..."
엄마는 수술 직전까지 충전기부터 챙겼다.
"가방 안에 넣어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수술 잘 받으시고요."
그렇게 오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녀의 극적(?) 만남이 이루어졌고, 무거운 마음을 뒤로한 채 병원을 빠져나와 여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방금 수술받으러 들어갔어."
"뭐? 갑자기? 며칠 전부터 안 좋다는 얘긴 들었는데..."
엄마는 엄살이 심하고 자식들한테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원한다. 특히 장녀인 내게 거는 기대가 큰 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나한테 먼저 연락하거나 상의한다. 그만큼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약속을 잡아놓으면 오늘처럼 집안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호출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작년엔 아버지의 대상포진과 할머니의 장례식, 그 전엔 외할머니의 장례식 등등. 남다른 기대를 받으며 자란 K 장녀의 위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긴급하거나 중요한 상황에 발휘된다. 부모님의 수술과 입원이 그랬고,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는 손님 안내와 식사, 부의금 정리 등을 도맡으며 동생들한테 해야 할 일을 일러주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의 병이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몇 년 전, 충격받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거나 우울증이 심해 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때에 비하면. 가끔 내 마음을 몰라주고 아픈 곳을 찌르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지금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날에도 하늘은 맑고 꽃은 저 좀 봐달라고 손짓한다. 봄꽃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그래도 안심하긴 이르다. K 장녀에게 안심이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 같은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