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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Jun 18. 2024

빌어먹을 인생


그는 방금 결단을 내린 사람답게 힘찬 발걸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향해 걸어갔다.

-도리스 레싱, <20년>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라는 제목을 본 순간,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리 인생이 내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거나 치사하게 나온다고 해도 '빌어먹을 인생 따위'라고 치부해 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을까.


오래전에 봤던 중국 영화 <인생>은 한 남자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 인생은 해피 엔딩보다는 새드 엔딩 혹은 비극에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뮤니티에 떠도는 수많은 사연,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에 겹겹이 쌓인 개인의 역사는 저마다 다른 무게와 빛깔의 인생으로 빚어진 거겠지.


오후 내내 강의 준비를 하면서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곳곳에 숨겨놓은 콘텐츠와 아이디어를 하나의 주제로 엮어가면서 회색빛 풍경이 알록달록한 프리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순간을 느껴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버둥거려도 제자리걸음이거나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절망의 구덩이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인생은 권태라는 톱니바퀴 위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어차피 빌어먹을 인생이라면, 끝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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