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사랑한 수달

by 은수달


"이모 언제 올 거야?"

"금요일 저녁에 갈게. 그때까지 엄마랑 할머니랑 재밌게 놀고, 말 잘 듣고 있어."




어제저녁, 퇴근 후 택시를 타고 조카들을 만나러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메뉴는 조카님들 취향에 맞추어 어머니가 골랐다.


"손님, 통화 잠시 해도 될까요?"

기사님이 양해를 구하고 짧게 통화한 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면 매너가 좋아지는 걸까?'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택시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이모를 유난히 좋아하는 제주도 조카님들 덕분에 난 수시로 오분 대기조가 된다.

한 달 넘게 밤낮이 바뀌어 울어대던 큰 조카는 어느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순한 데다 말이 어눌했던 막내 조카는 갈수록 고집이 강해진다.



몇 년 사이에 조카가 셋이나 태어나는 바람에 나의 명절이나 휴가는 물 건너갔다.

작년엔 코로나 덕분에(?)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조카 없는 명절을 보냈지만,

조만간 조카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막내 조카가 네 살 무렵, 이모랑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기 싫다며 떼를 썼다. 좀 더 크고 나서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이별을 고하니 신발로 애꿎은 땅만 파며 내 시선을 피했다.


막둥이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유튜브를 틀어달라고 졸라서 '밥 먹고 나면 틀어줄게'라며 약속부터 한다.

"밥 잘 먹으면 핑크퐁 틀어줄 거지?"

다짐하듯 되묻는 조카한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이랑 따로 먹을래요."

어머니가 조카의 숟가락 위에 밥과 두부를 얹어서 먹이려고 하자, 조카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의사를 표현한다. 미각이 발달해 음식이 한 데 섞이는 걸 싫어하는 걸 보니 내 조카 맞다. 나도 어릴 적엔 비빔밥이나 국밥 종류를 싫어했었다.


여동생을 닮아 손재주가 남다르지만 제부를 닮아 차분하면서도 행동이 느린 큰 조카. 여동생이 임신했을 때부터 옆에서 지켜봐서 그런지 애정이 남다르지만, 숫기가 없어서 조금은 거리가 느껴진다.


여동생의 마지막 검사를 앞두고 지하철에 동행한 적 있다. 누가 봐도 만삭인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아서 속상했다.

"병원까지 가려면 한참 걸리는데... 앉을자리가 없네."

난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고, 마침 학생 한 명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요즘엔 임산부석이 따로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 지 조카들을 지켜보면서 실감 중이다.


수달에 대한 조카들의 사랑이 유별나서 버거울 때도 있지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날 애틋하게 부르며 재롱부리는 조카들을 보면

비바람을 피해 잠시 쉴 수 있고,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는 이모 혹은 고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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