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행복 강박증에 빠진 것 같다.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행복해지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행복이 주문처럼 외운다고 저절로 찾아온다면, 누구나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의 정의부터 진정한 의미까지 다양한 시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행복이 생존이나 번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시각이 흥미로웠다.
1장 행복은 생각인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을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게 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행복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성에 대한 맹신은 스스로 이성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셈이다.
3장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summum bonum'이라고 단정했는데, 라틴어로 'summum'은 '최고'라는 뜻이고, 'bonum'은 '좋다'라는 의미다. 즉, 행복은 최고의 선이 되는 것이다. (52)
세상은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53)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또한 살아남고 싶다는 욕구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장식용으로 알려진 수컷 공작새의 긴 꼬리 역시 우수한 유전자를 드러내는 상징이며, 이를 통해 짝짓기 빈도를 늘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역설한다.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다. 피카소라는 한 생명체가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본다.
위의 주장처럼, 대부분 예술가들은 자신의 존재나 가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무언가를 남기거나 생존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