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이야기, 혹은 우리를 살게 하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작가 스스로를 구한 이 소설이, 독자에게도 가닿길 바란다.
-알라딘 책 소개 중
2024년 10월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뜨거웠다.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소설집 몇 권을 주문했는데, 그중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소년이 온다' 이후 한강 작품은 오랜만에 접하는 거라 설렘을 안고 첫 장을 펼쳤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중략)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원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9쪽)
제주도 겨울 풍경을 도입부로 설정한 것부터 한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묘사로 시작하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도입부에 주제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가 작품 마지막까지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은 한강 작품을 잠시라도 접한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작을 오래전에 읽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만 어렴풋하게 기억나지만, 이번 작품은 확실히 가독성이 좋아지고 문체도 좀 더 섬세해진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이 소설부터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힌 역사를 왜 작가는 치열하게 파고드는 것일까. 그걸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자발적으로 사라지길 원하는 생물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지워지거나 소멸되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