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동생의 친구로부터 부고를 들었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인 줄 알았는데, 친동생이라고 했다. 거기다 사망 원인이 자살이란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가족들한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단다.
언젠가부터 말수가 줄어들고 귀가하면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기에 그저 회사 생활이 힘들거나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출근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에서 나오지 않아 확인해 보니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것이다.
뉴스에서만 듣던 고독사 혹은 자살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과거에는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중장년층이 많았다면, 요즘엔 연령대나 이유가 다양해졌다. 고졸인 40대 남성이 고시원에서 지내며 일용직으로 버티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지인 역시 회사에서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우리 사회는 개인이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직장을 잃고 실업급여나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편법으로 피고용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나 역시 한 달 정도 근무하던 곳에서 사장이 월급을 떼먹는 바람에 노동부를 들락거려야만 했고, 사장이 중간에 도주해서 결국 받지 못했다.
주위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면, 누군가의 관심이나 애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각자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인데,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내게 돈을 빌리거나 지나치게 기댈까 봐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도 한다.
우울이라는 터널에 갇혔을 때, 고민을 주위에 털어놓는 대신 책 읽고 산책하면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굿바이 블랙독'이랑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 힘든 일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면 조용히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긴다.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머리를 식히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한발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하려 애쓰다 스스로 늪에 빠지는 대신, 사람이든 책이든 명상이든 기댈 곳을 찾아보자. 비빌 언덕이 있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거나 소중한 목숨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