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있으면 I인지 E인지 헷갈리나 보다. 하지만 입을 연 순간, 사람들은 내가 E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어느 모임에서 열 명이 넘는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어쩌다 보니 I와 E가 각각 다른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I 중에서도 활발한 분이 대화를 주도했고, 나름 화기애애했다. 그러다 활발한 I가 E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느 순간 말수가 줄어들더니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나의 가족은 휴일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전형적인 E 패밀리다. 부모님 덕분에 또래 아이들과 종종 어울렸고, 산이며 바다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막히는데 이번 휴가 때는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어때요?"
어느 여름, 멀리 가는 게 지치고 두려워서 가족들한테 제안했고, 우리 가족은 난생처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본가에 모여 각자 쉬었다. 물론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지만.
E라고 해서 항상 야외 활동을 즐기는 건 아니다. 60퍼센트 정도 E의 성향을 가진 난 집에서 노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선호하는 건 같은 공간에 모여 각자 다른 일을 하거나 중간에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동생들이 집을 지어 같이 살자고 제안했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얼른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누군가를 나의 공간에 초대하는 것을 즐기지만, 적당히 놀다가 갔으면 한다.
"우리 집보다 더 편한 것 같아. 여기 있으면 잠이 너무 잘 와."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 엄마부터 친구, 지인까지 우리 집에선 편하게 잠들었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편안한 사람은 아닌데, 적어도 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통한 걸까. 그래서 나의 편리함만큼 가끔 들르는 손님의 입장도 고려해서 공간을 꾸몄다.
코로나 시절을 잘 견딘 걸 보면, 내 안에는 40퍼센트의 I가 숨어있는 것 같다. 지금도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야말로 N의 감성과 I의 차분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니까.
자신이 I라고 해서 열등감을 가지거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지 말자. 내면의 E를 최대한 이끌어내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T이지만 직장에선 F 모드로 변신하고, E이지만 때론 I인 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