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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유언

by 은수달


"담주 수요일에 외할머니 제사 지내기로 했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1년 넘게 병원에서 지내다 7년 전 여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그전엔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소일도 하면서 건강하게 지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고, 의사는 길어야 두 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그분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고통은 수시로 그분을 찾아왔고, 결국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기다렸다. 하루는 '집에 가고 싶다'라고 했고, 하루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며 저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외할머니를 보는 일이 괴로웠다.


"건강하고 재밌게 살아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그분을 모시고 한의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내 차가 하차감이 좋아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 유언처럼 가슴속에 남아 있다.


며칠 전 꿈에 외할머니가 나왔다. 우연히 외가에 들렀는데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며 먹고 가라고 했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나온 걸까. 작년 이맘때에도 꿈에 나오셨다.


자식들한테 받은 용돈을 모아 손자들한테 밥도 사주고 등록금도 보태주던 외할머니. 병원에 있을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내색을 거의 안 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단다. 역시 나의 외할머니답다. 생전에 같이 다니면 동안이라 모녀 사이로 오해받기도 했다.


가끔 좋은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분이 생각난다. 여름에 고추를 말리느라 마음 편하게 휴가도 못 가고, 장녀가 낳은 삼 남매를 데려와 씻기고 입히던 모습도. 그래서 우린 밭에서 키운 제철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힘들거나 막다른 길에 부딪칠 때마다 그분의 유언(?)을 떠올리며 건강하게, 또 재밌게 살아가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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